성주 이씨 돌림자 항렬표 족보 시조

2026년 02월 10일 by 오르야

    성주 이씨 돌림자 항렬표 족보 시조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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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역사를 들여다보면, 격동의 시대 속에서도 곧은 절개와 뛰어난 학문으로 가문을 빛낸 위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경상북도 성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주 이씨(星州 李氏)는 고려 말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명신과 학자를 배출한 명문가로 손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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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글을 보고 계신 분이라면, "내가 성주 이씨 몇 대손일까?", "우리 집안 돌림자는 어떤 원리로 정해진 걸까?"와 같은 궁금증을 가지고 계실 텐데요. 자신의 뿌리를 찾는 과정은 단순히 이름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 조상들의 삶과 지혜를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 됩니다.

오늘은 성주 이씨의 시조부터 5대 분파, 그리고 가장 많이 궁금해하시는 항렬표(돌림자) 정보까지 상세하게 정리해 드립니다.

충절의 시작, 시조 이순유와 중시조 이장경의 역사

모든 가문에는 그 시작을 알리는 인물이 있습니다. 성주 이씨의 역사는 신라 말기의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시작됩니다.

시조 이순유(李純由): 두 임금을 섬기지 않은 충신 성주 이씨의 시조는 신라 경순왕 시절 재상(이부상서)을 지냈던 이순유입니다. 그는 본래 이름이 '극신(克臣)'이었으나, 신라가 고려에 나라를 넘겨주며 망하게 되자, 충절을 지키기 위해 중대한 결심을 합니다.

"충신은 불사이군(不事二君), 즉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그는 고려의 벼슬 제의를 단호히 거절하고, 이름을 '순유'로 고친 뒤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당시 경산부)로 내려가 은거했습니다. 이후 그의 후손들은 대대로 성주 지방의 호장(戶長)직을 맡으며 지역의 유력한 호족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처럼 성주 이씨는 시작부터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정신'을 가풍으로 삼았습니다.

중시조 이장경(李長庚): 가문을 반석 위에 올리다 시조 이순유의 12세손인 이장경은 성주 이씨를 명문가의 반열에 올린 중시조입니다. 고려 고종 때의 인물인 그는 슬하에 다섯 아들(백년, 천년, 만년, 억년, 조년)을 두었는데, 놀랍게도 이 다섯 아들이 모두 문과에 급제하는 경사를 맞이했습니다.

한 집안에서 한 명 나오기도 힘든 과거 급제자가 다섯 명이나 나왔으니, 당시 조정에서도 이를 매우 높이 샀습니다. 이 공로로 이장경은 국왕으로부터 경산부원군에 봉해졌고, 오늘날 후손들은 그를 중시조로 모시며 가문의 번영을 기리고 있습니다.

오룡(五龍)의 전설, 성주 이씨 5대 파와 주요 인물

중시조 이장경의 뛰어난 다섯 아들은 훗날 성주 이씨를 지탱하는 5개의 큰 기둥, 즉 5대 파의 시조(파조)가 됩니다. 이를 '오룡(五龍)'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자신이 어느 파에 속하는지 알고 싶다면, 족보의 가장 앞부분이나 집안 어른들께 이 다섯 형제 중 누구의 후손인지를 여쭤보는 것이 가장 빠릅니다.

  1. 밀직공파 (密直公派)
    • 파조: 첫째 아들 이백년 (李百年)
    • 특징: 밀직제학이라는 높은 벼슬을 지냈습니다. 맏형으로서 가문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2. 참지공파 (參知公派)
    • 파조: 둘째 아들 이천년 (李千年)
    • 특징: 참지정사를 역임했습니다. 학문과 덕망이 높은 가계로 알려져 있습니다.
  3. 시중공파 (侍中公派)
    • 파조: 셋째 아들 이만년 (李萬年)
    • 특징: 고려 시대 최고 관직 중 하나인 문하시중을 지냈습니다. 정치적 영향력이 상당했던 파입니다.
  4. 유수공파 (留守公派)
    • 파조: 넷째 아들 이억년 (李億年)
    • 특징: 개성유수를 지냈습니다. 교과서에도 실린 유명한 설화 '형제투금(금덩이를 주워 형제가 나누려다 의가 상할까 봐 물에 던진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이 바로 이억년과 동생 이조년입니다.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5. 문열공파 (文烈公派)
    • 파조: 다섯째 아들 이조년 (李兆年)
    • 특징: 대제학을 지냈으며, 고려 말 충혜왕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충신입니다. 우리에게는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로 시작하는 <다정가> 시조의 작가로 더욱 친숙합니다. 문학적 소양과 강직한 성품을 동시에 지녔던 인물입니다.

내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을까? 성주 이씨 항렬표 (돌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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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를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항렬(行列)'입니다. 항렬은 같은 혈족 안에서 세대(generation)의 순서를 나타내는 것으로, 흔히 이름에 들어가는 '돌림자'를 통해 이를 구분합니다. 처음 만나는 친척이라도 돌림자를 확인하면 "아, 이분이 나보다 할아버지뻘이구나" 혹은 "내 조카뻘이구나"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뿌리를 찾아서: 본관 성주와 집성촌

성주 이씨의 본관인 경상북도 성주(星州)는 과거 성산(星山), 벽진(碧珍), 경산(京山), 광평(廣平)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유서 깊은 고장입니다. 가야산의 정기를 받은 이곳은 예로부터 인재가 많이 나기로 유명했습니다.

현재도 성주군 일대, 특히 초전면과 벽진면에는 성주 이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성주 외에도 경상북도 고령군, 칠곡군 그리고 전라남도의 보성군, 고흥군 등지에도 많은 후손이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약 조상의 흔적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면, 성주군 성주읍에 위치한 '성주 이씨 시비공원'을 방문해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곳에는 시조 이순유와 중시조 이장경을 비롯한 선조들의 유적비가 세워져 있어 가문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벽진면에 있는 '안산서원(安山書院)'은 시조와 중시조를 배향(모시는)하는 곳으로, 엄숙하고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조상의 얼을 기릴 수 있는 장소입니다.

맺음말: 명문가의 자부심을 잇다

성주 이씨는 단순히 사람이 많은 성씨가 아닙니다. 고려의 멸망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시조의 충절, 형제간의 우애를 보여준 투금 설화, 그리고 <다정가>를 통해 보여준 문학적 감수성까지. 이 모든 이야기가 성주 이씨라는 이름 안에 녹아 있습니다.

족보와 항렬표를 찾아보는 것은 낡은 옛것을 들추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며,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작은 이정표를 발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정리해 드린 내용이 성주 이씨 가문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자신의 뿌리를 이해하는 데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혹시 더 깊이 있는 정보가 필요하다면, 각 파의 종친회나 족보 전문 도서관을 활용해 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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