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산 송씨 돌림자 항렬표 족보 시조 목차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성씨와 본관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여산 송씨(礪山 宋氏)는 유구한 역사와 수많은 인물을 배출한 명문가로 손꼽힙니다. 자신의 뿌리를 정확히 알고 조상의 발자취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을 넘어, 현재의 나를 이해하는 중요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명절이나 가족 모임에서 어른들이 "너는 무슨 파 몇 대 손이냐?"라고 물으실 때, 혹은 내 이름에 담긴 뜻이 궁금할 때가 있지 않으셨나요?
오늘은 여산 송씨의 시조부터 시작해 족보의 유래, 그리고 많은 분이 가장 궁금해하시는 돌림자(항렬표) 보는 법까지 알기 쉽게 정리해 드리려 합니다. 전라북도 익산의 옛 지명인 '여산'을 본관으로 삼아 천년의 세월을 이어온 여산 송씨 가문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의 뿌리를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여산 송씨의 기원과 시조 송유익
모든 가문에는 시작점이 있습니다. 여산 송씨의 역사는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시조는 고려 때 진사(進士)를 지내고 공을 세워 여산군(礪山君)에 봉해진 송유익(宋惟翊) 선생입니다. 훗날 은청광록대부 추밀원부사에 추증되셨으며, 이분의 후손들이 본관을 여산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모든 송씨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는 설입니다. 여산 송씨뿐만 아니라 은진 송씨, 서산 송씨 등 우리나라의 모든 송씨는 당나라 호부상서였던 도시조(都始祖) 송주은(宋柱殷) 선생의 후손으로 전해집니다. 송주은의 후손인 송자영 선생에게 세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가 바로 여산 송씨의 시조 송유익 선생이고, 둘째가 은진 송씨의 시조, 셋째가 서산 송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즉, 본관은 다르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한 형제나 다름없는 셈입니다.
본관인 '여산'은 현재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일대를 가리킵니다. 백제 시대에는 지량초현, 신라 시대에는 여량현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 시대에 이르러 여산군이 되었습니다. 이곳은 가문의 발상지로서 지금도 시조의 묘소가 태성리에 자리 잡고 있으며, 매년 많은 후손이 찾아와 조상의 얼을 기리고 있습니다.
가문의 번영과 5대 분파 구분하기
여산 송씨는 4세손인 송송례(宋松禮) 선생 대에 이르러 크게 번성했습니다. 송송례 선생은 고려 충렬왕 때 문하시중(지금의 국무총리 격)을 지내며 가문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이후 후손들이 벼슬길에 오르고 자손이 번창하면서, 6세손을 기준으로 크게 5개의 파(派)로 나뉘게 됩니다. 족보를 보거나 항렬을 따질 때 자신이 어느 파에 속하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요 5대 분파는 다음과 같습니다.
- 원윤공파(元尹公派): 파조는 개성원윤을 지낸 송운(宋惲) 선생입니다.
- 밀직공파(密直公派): 파조는 밀직부사를 지낸 송방영(宋邦英) 선생입니다.
- 소윤공파(少尹公派): 파조는 소윤 벼슬을 지낸 송원미(宋元美) 선생입니다.
- 지신공파(知申公派): 파조는 지신사를 지낸 송린(宋璘) 선생입니다.
- 정가공파(正嘉公派): 파조는 정가공 송서(宋瑞) 선생입니다.
자신의 집안이 위 5개 파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부모님이나 조부모님께 여쭤보시면 족보를 찾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각 파조의 관직명을 따서 파 이름을 지었기 때문에 기억하기도 좋습니다. 이 분파 아래에서 다시 세부적인 지파로 나뉘기도 하므로, 정확한 계보는 가승보나 족보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여산 송씨 항렬표(돌림자) 이해하기
많은 분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바로 내 이름, 혹은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사용하는 '항렬자(돌림자)'입니다. 항렬은 같은 혈족 안에서 상하 관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만든 서열입니다. 여산 송씨는 대동항렬(전체 문중이 공유하는 항렬)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기본적으로 우주 만물의 이치인 오행상생법(목(木) → 화(火) → 토(土) → 금(金) → 수(水))의 원리를 따릅니다.
역사 속 여산 송씨 인물과 유적지 탐방
여산 송씨 가문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충신과 학자를 배출하며 명문가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문의 자부심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사였던 송상현(宋象賢) 선생입니다. 부산 동래성 전투에서 왜군이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그렇지 않으면 길을 비켜달라"고 했을 때,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비켜주기는 어렵다(전사이가도난, 戰死易假道難)"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끝까지 항전하다 순절하셨습니다.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에 위치한 '충렬사'는 송상현 선생을 기리는 곳으로, 가문의 기개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입니다.
또한, 비운의 왕비인 정순왕후(定順王后) 역시 여산 송씨입니다. 단종의 비였던 정순왕후는 단종이 폐위되면서 평생을 홀로 지내야 했지만, 끝까지 절개를 지키며 기품을 잃지 않았던 인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여량군 송현수 역시 단종 복위를 꾀하다 화를 입은 충신이었습니다.
학문적으로는 예학의 대가 송익필(宋翼弼) 선생이 있습니다. 조선 중기 8문장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예학의 거두인 사계 김장생을 가르친 스승으로도 유명합니다. 그의 학문적 깊이는 조선 성리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외에도 대전 중구 침산동에 있는 뿌리공원에 가시면 여산 송씨의 조형물인 '결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가문의 유래비와 함께 설치되어 있어 자녀들과 함께 방문하여 우리 가문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 나누기 좋은 장소입니다. 또한 경기도 여주시에는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17세기 간행 '여산송씨 족보'가 보존되어 있어 가문의 기록 정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산 송씨는 단순한 성씨의 구분을 넘어, 충절과 학문을 숭상해 온 자랑스러운 유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정리해 드린 시조와 분파, 그리고 항렬표 정보가 여러분의 뿌리를 이해하는 데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조상들이 남긴 훌륭한 정신을 이어받아 현대 사회에서도 빛나는 가문의 후손으로 살아가시길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