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서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2025년 07월 29일 by 오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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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서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이천 서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우리나라의 수많은 성씨는 저마다 고유한 역사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천 서씨(利川 徐氏)는 나라의 위기 속에서 빛을 발한 위대한 조상과 깊은 학문의 전통으로 이름난 명문가입니다. 혹시 주변에 서(徐)씨 성을 가진 친구나 동료가 있나요? 아니면 바로 당신의 뿌리가 이천 서씨일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은 신라 시대부터 고려,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굳건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 온 이천 서씨의 시조와 유래, 빛나는 인물들, 그리고 세대를 잇는 지혜인 항렬표(돌림자)까지, 그 모든 것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보려 합니다. 나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 함께 떠나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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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찬 서신일(徐神逸), 이천 서씨의 문을 열다

모든 가문에는 그 시작을 연 시조(始祖)가 있습니다. 이천 서씨의 시조는 신라 시대에 아찬(阿飡) 벼슬을 지낸 서신일(徐神逸)입니다. '신령스럽고 뛰어난 인물'이라는 이름의 뜻처럼, 그는 훗날 고려 건국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가문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서신일은 효공왕(孝恭王) 시절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지금의 경기도 이천인 효양산(孝養山)에 들어가 학문과 무예를 닦으며 때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후삼국을 통일하려는 왕건(훗날 고려 태조)이 이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서신일은 왕건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군량미를 지원하고, 화살을 쏘아 길조를 보여주는 등 그를 도와 고려 건국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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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감격한 왕건은 그에게 '이천'을 본관(本貫)으로 하사하고, 서신일의 아들 서필(徐弼)을 등용하여 나라의 중신으로 삼았습니다. 이로써 이천(利川)은 서씨 가문의 영원한 고향이 되었고, 서신일은 이천 서씨의 자랑스러운 시조로 기록되었습니다.

2. 말 한마디로 80만 대군을 물리친 외교의 신, 서희(徐熙)

이천 서씨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시조 서신일의 손자이자, 서필의 아들인 장위공(章威公) 서희(徐熙)입니다. 그는 한국사 최고의 외교관이자 협상가로 평가받는 위인입니다.

993년, 거란(요나라)의 장수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해왔습니다. 거란의 막강한 군사력 앞에 고려 조정은 항복하자는 의견과 땅을 떼어주고 화친하자는 의견으로 나뉘어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때 서희는 홀로 적진으로 들어가 소손녕과 담판을 벌입니다.

"우리는 고구려의 후예이기에 나라 이름을 고려라 한 것이다. 어찌 너희 땅을 침범했다 하는가?"

서희는 당당한 논리로 거란의 침략 명분이 부당함을 지적하고, 고려가 거란과 교류하지 못한 것은 중간에 여진족이 길을 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압록강 동쪽의 땅을 우리에게 준다면 어찌 교류하지 않겠는가?"라며 역으로 제안했습니다. 그의 논리 정연함과 대담함에 감복한 소손녕은 결국 군사를 물렸을 뿐만 아니라, 압록강 동쪽의 땅, 즉 '강동 6주'를 고려에 넘겨주었습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말로써 영토를 확장하고 나라를 구한 서희의 외교 담판은 오늘날까지도 위기 협상의 가장 빛나는 사례로 손꼽힙니다. 이 일로 이천 서씨는 '강동 6주의 가문'이라는 자랑스러운 별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3. 하나의 뿌리,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간 분파(分派)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이천 서씨는 여러 분파로 나뉘어 번성했습니다. 시조로부터 내려온 하나의 큰 줄기가 자손들의 시대와 거주지에 따라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간 것입니다. 분파는 주로 특정 조상을 파조(派祖)로 모시며 형성됩니다.

이천 서씨는 크게 14개의 분파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시조 서신일의 7세손인 서일(徐鎰)의 아들들을 파조로 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분파는 다음과 같습니다.

  • 원파(대종파, 大宗派): 서일의 맏아들인 서질(徐質)을 파조로 하는 가장 큰 분파입니다.
  • 효자공파(孝子公派): 둘째 아들인 서량(徐亮)을 파조로 합니다.
  • 문하시중공파(門下侍中公派): 넷째 아들인 서성(徐成)을 파조로 합니다.
  • 판군기사공파(判軍器事公派): 다섯째 아들인 서고(徐誥)를 파조로 합니다.
  • 부사공파(副使公派): 여섯째 아들인 서시(徐諡)를 파조로 합니다.
  • 참의공파(參議公派): 일곱째 아들인 서의(徐議)를 파조로 합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분파가 존재하며, 비록 파는 나뉘었지만 모두가 '이천'이라는 하나의 본관 아래 서신일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4. 세대와 이름을 잇는 지혜, 이천 서씨 항렬표

항렬(行列)은 같은 혈족 안에서 세대 간의 관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이름에 특정 글자를 넣어 표시하는 전통입니다. 이 특정 글자를 '항렬자(行列字)' 또는 '돌림자'라고 부릅니다. 이천 서씨 역시 고유한 항렬표를 통해 가문의 질서와 유대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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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역사와 현대를 아우르는 이천 서씨 인물들

이천 서씨는 서희와 같은 위대한 조상뿐만 아니라, 역사와 현대 사회 다방면에서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습니다.

  • 서필(徐弼): 서희의 아버지로, 고려 광종 때 내의령(內議令)을 지내며 왕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강직한 신하입니다.
  • 서경(徐兢): 고려의 학자이자 외교관으로,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후 견문록인 『고려도경(高麗圖經)』을 저술하여 당시 고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전했습니다.
  • 서경덕(徐敬德): 조선 중기의 위대한 학자이자 사상가입니다. 비록 본관은 다르지만, 서씨 가문의 학문적 깊이를 상징하는 인물로 자주 언급됩니다.
  • 서정주(徐廷柱): '미당'이라는 호로 잘 알려진 대한민국 대표 시인입니다. 그의 시는 한국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 서태지(徐太志): '문화 대통령'으로 불리며 1990년대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 혁명을 일으킨 가수이자 프로듀서입니다.

이처럼 이천 서씨는 외교, 학문,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족적을 남기며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뿌리를 아는 자부심

지금까지 이천 서씨의 시조 서신일부터 위대한 외교관 서희, 그리고 가문을 이어온 분파와 항렬, 현대 인물에 이르기까지 깊이 있게 살펴보았습니다. 한 가문의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현재의 우리를 있게 한 뿌리이며, 미래로 나아갈 힘을 주는 자양분입니다.

이천 서씨의 이야기는 지혜와 용기, 그리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떻게 한 가문을 명문으로 만들고, 그 정신이 후손들에게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당신이 이천 서씨의 후손이라면 가슴 벅찬 자부심을, 아니라면 우리 역사를 빛낸 한 가문의 위대함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뿌리를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첫걸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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