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신씨 시조 족보 항렬 인물

2025년 07월 08일 by 오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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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신씨 시조 족보 항렬 인물
거창 신씨 시조 족보 항렬 인물

"나의 성씨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봤을 법한 질문입니다. 수많은 성씨 중에서도 오늘은 고려 시대, 머나먼 중국 땅에서 건너와 한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가문, 거창 신씨(居昌 愼氏)에 대해 깊이 알아보려 합니다.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수많은 학자와 청렴한 관리들을 배출하며 명문가로 자리 잡은 거창 신씨.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가문의 역사를 넘어, 꼿꼿한 선비정신과 나라를 위한 충절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지금부터 거창 신씨의 시조부터 본관 유래, 항렬, 그리고 가문을 빛낸 주요 인물들까지, 당신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흥미로운 시간 여행을 함께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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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다 건너온 시조, 공헌공 신수(恭獻公 愼修)

모든 가문에는 그 시작을 연 시조가 있듯, 거창 신씨의 뿌리는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시조는 바로 신수(愼修, ?~1101) 공입니다.

놀랍게도 신수 공은 본래 중국 송나라 개봉부 출신의 선비였습니다. 1068년(고려 문종 22년), 그는 나라의 중요한 임무를 띤 국신사(國信使)의 일원으로 고려 땅을 밟게 됩니다. 당시 고려의 임금이었던 문종은 신수 공의 깊은 학문과 뛰어난 인품에 크게 감명받았습니다. 문종은 그가 고려에 남아 나라를 위해 일해주기를 간곡히 청했고, 이에 신수 공은 고심 끝에 고려에 귀화하여 개경(현재의 개성)에 정착하게 됩니다.

고려에 뿌리를 내린 신수 공은 1075년(문종 29년) 관리들의 비위를 감찰하는 중요한 직책인 시어사(侍御史)에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며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훗날 숙종 임금 때에는 수사공(守司空) 우복야(右僕射) 참지정사(參知政事)라는 재상급의 높은 벼슬에까지 올랐습니다. 특히 그는 학식뿐만 아니라 의술(醫術)에도 조예가 깊어 명성이 자자했다고 전해집니다.

나라에 세운 큰 공을 인정받아, 사후에는 '공헌공(恭獻公)'이라는 시호를 받으며 고려의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뚜렷이 새겼습니다. 이처럼 거창 신씨는 학문과 덕망을 갖춘 외국의 인재를 귀히 여긴 고려 왕의 안목에서 시작된 특별한 가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거창(居昌)'에 터를 잡다: 본관의 유래와 족보

그렇다면 시조 신수 공이 개경에 정착했음에도 후손들은 어떻게 '거창'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을까요?

그 비밀은 시조의 7세손인 신성(愼成)에게 있습니다. 고려 말, 산원동정(散員同正)이라는 벼슬을 지낸 신성 공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으로 이주하여 자리를 잡았습니다. 바로 이분이 거창에 입향(入鄕)한 첫 조상이 된 것입니다.

이후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거창을 중심으로 번성하며 살아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거창'을 자신들의 뿌리를 상징하는 본관(本貫)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거창 신씨"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가문의 역사는 구전으로만 내려온 것이 아닙니다. '거창신씨세보(居昌愼氏世譜)'와 같은 족보를 통해 시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문의 계보와 인물들의 행적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보존해오고 있습니다. 족보는 한 가문의 살아있는 역사책인 셈이죠.

3. 세대를 잇는 약속, 거창 신씨 항렬표(行列表)

"제 이름의 이 글자가 혹시 돌림자인가요?"

'항렬(行列)' 혹은 '돌림자'는 같은 혈족, 같은 세대임을 나타내는 이름 속 약속입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나, 그리고 내 자녀의 이름에 일정한 규칙에 따라 같은 글자를 넣어 세대 간의 위아래를 분명히 하고, 가문의 일원으로서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문화입니다.

거창 신씨는 대동 항렬표(大同 行列表)를 통해 세대의 순서를 정하고 있습니다. 혹시 자신의 이름이나 가족의 이름에 아래의 글자가 있는지 한번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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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문을 빛낸 거창 신씨 주요 인물들

거창 신씨는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습니다. 가문의 명예를 드높인 대표적인 인물들을 시대별로 만나보겠습니다.

[고려 시대]

  • 신성(愼成): 앞서 언급했듯, 거창 신씨의 중시조(中始祖)라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거창에 처음 터를 잡아 후손들이 번성할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 신이(愼頤): 신성의 아들로, 고려 말 이부상서, 예부상서 등 오늘날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고위 관직을 역임하며 가문을 빛냈습니다.

[조선 시대]

  • 신기(愼幾, 1399~1464): 조선 시대 거창 신씨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세종대왕 시절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학사로 활동한 엘리트 관료였습니다. 특히 그의 이름 앞에는 '청백리(淸白吏)'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습니다. 청백리는 조선 시대 관료가 받을 수 있는 가장 영예로운 칭호로, 재물에 대한 욕심 없이 오직 강직하고 청렴하게 공직 생활을 한 인물에게만 주어졌습니다. 그의 꼿꼿한 성품과 높은 명망은 거창 신씨 가문의 자랑입니다.
  • 신종호(愼宗濩): 세조의 왕위 찬탈에 맞서 단종의 복위를 꾀했던 '사육신' 중 한 명인 성삼문 등과 뜻을 함께한 인물입니다. 비록 거사는 실패로 돌아가 화를 입었지만,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어린 임금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의 충절은 오늘날까지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 신제(愼濟):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히 일어선 의병장입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망설임 없이 의병을 일으켜 왜군에 맞서 싸우며 구국의 일선에 섰습니다.

[현대 인물]

거창 신씨의 활약은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 신승남(愼承男, 1944~): 제31대 검찰총장을 역임하며 법조계에서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 신용남(愼鏞南): 거창신씨 절충장군종중 회장을 맡아 종친들을 하나로 모으고 가문의 전통을 계승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마치며: 뿌리 깊은 나무의 자부심

지금까지 거창 신씨의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인물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중국에서 건너온 시조 신수로부터 시작하여 거창에 뿌리내리고, 학문과 청렴, 충절이라는 가치를 지키며 대를 이어온 거창 신씨 가문.

그들의 이야기는 비단 한 성씨의 역사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자신의 뿌리를 되돌아보고, 조상들이 지켜온 소중한 가치를 되새기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부심과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유산입니다. 이 글을 통해 거창 신씨 종친 여러분께는 자긍심을, 다른 성씨를 가진 분들께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보는 즐거운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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