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2025년 05월 25일 by 오르야

    안동김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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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안동김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수많은 명문 가문들이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안동김씨(安東金氏)는 빼어난 인물들을 다수 배출하며 정치, 학문,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가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안동김씨는 '구(舊)안동'과 '신(新)안동'으로 나뉘어 불리는데, 이는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통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바로 이 안동김씨, 구체적으로는 구 안동김씨와 신 안동김씨의 족보와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항렬표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자신의 뿌리를 찾는 여정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더욱 흥미로운 시간이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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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 그 깊고도 넓은 세계로의 초대

안동김씨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김씨라는 성씨의 큰 줄기와 그 안에서 안동김씨가 차지하는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왜 구 안동과 신 안동으로 나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들이 역사 속에서 어떤 발자취를 남겼는지 살펴보는 것은 가문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김씨(金氏)의 대분류와 안동김씨의 위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성씨가 바로 김씨(金氏)라는 사실은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씨족통보』에 따르면 김씨의 본관은 무려 623본에 달한다고 하니, 그 규모가 실로 어마어마하지 않습니까?! 이 수많은 김씨는 크게 가락국 시조 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수로왕계(김해김씨 등)와 신라 왕실의 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는 김알지계로 나뉩니다. 안동김씨는 바로 이 김알지계에 속하며, 신라 왕실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유서 깊은 가문입니다. 김알지의 7세손인 미추왕(신라 13대)이 처음으로 왕위에 오른 이래,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김알지의 28세손)에 이르기까지 총 38명의 김알지 후예가 신라의 왕위를 계승하였으니, 그 역사적 배경이 정말 대단하지요!

구(舊)안동과 신(新)안동, 두 줄기의 강물

안동김씨가 '구안동'과 '신안동'으로 구분되는 가장 큰 이유는 시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구(舊)안동김씨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김은열(金殷說)의 둘째 아들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하고 있습니다. 반면, 신(新)안동김씨는 고려 태사(太師)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모시고 있지요. 이처럼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통이 존재하기에, 안동김씨의 족보와 항렬을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구안동과 신안동을 구분하여 살펴보아야 합니다. 비록 뿌리는 다르지만, 두 가문 모두 안동을 관향으로 삼으며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안동김씨의 눈부신 활약상

조선시대에 이르러 안동김씨 가문은 그야말로 눈부신 활약을 펼칩니다. 구안동과 신안동을 합쳐 정승(政丞) 19명, 대제학(大提學) 6명, 왕비(王妃) 3명을 배출하였으니, 이는 당대 최고의 명문가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특히 조선 후기 신안동김씨의 세도정치는 한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지요. 이처럼 화려한 역사는 안동김씨 후손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합니다.

구(舊)안동김씨: 충절과 학문의 전통을 잇다

구 안동김씨는 고려시대의 명장 김방경을 중시조로 모시며 가문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이들은 대대로 충절을 숭상하고 학문에 정진하며 명문가의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시조 김숙승(金叔承)과 중시조 김방경(金方慶)

앞서 언급했듯이 구안동김씨의 시조는 신라 경순왕의 후손인 김숙승(金叔承)입니다. 그는 공부시랑(工部侍郞)과 평장사(平章事)를 지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구안동김씨는 경순왕의 9세손이자 고려 원종 때의 명장인 김방경(金方慶)을 중시조(1세)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충렬공(忠烈公)이라는 시호를 받은 김방경은 삼별초의 난을 평정하고 왜구를 섬멸하는 등 국가에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시중(侍中), 삼중대광첨의중찬(三重大匡僉議中贊) 등의 높은 벼슬을 지내고 상락군(上洛君)에 봉해졌습니다. 그의 용맹과 지략은 오늘날까지도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구안동김씨의 주요 분파: 제안익(提按翼) 3파를 중심으로

김방경의 후손들은 여러 파로 나뉘어 번성하였는데, 그의 아들인 김선(金愃), 김흔(金忻), 김순(金恂), 김윤(金倫) 등이 모두 높은 벼슬에 오르며 가문의 기세를 드높였습니다. 특히 김선(金愃)의 아들들인 김승용(金承用), 김승택(金承澤), 김영돈(金永暾), 김영후(金永煦) 대에 이르러 가문은 더욱 융성하였으며, 이 중에서도 우정승(右政丞)을 지낸 김영후(金永煦)의 후손들이 조선 전기에 크게 세력을 확장하며 구안동김씨의 주축을 이루게 됩니다. 현재 구안동김씨는 김방경의 현손대에서 21파로 분파되었으나, 13파가 그 맥을 잇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김영후의 손자인 익달(益達)의 제학공파(提學公派), 사렴(士廉)의 안렴사공파(按廉使公派), 사형(士衡)의 익원공파(翼元公派) 등 이른바 '제안익(提按翼) 3파'가 구안동김씨 인구의 약 60~70%를 차지하며 가문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번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안동김씨가 배출한 역사적 인물들

구안동김씨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원주목사로 순절한 김제갑(金悌甲)과 그의 용맹한 조카들인 김시민(金時敏)·김시약(金時若) 형제는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또한, 판서를 지낸 청백리 김시양(金時讓)과 그의 아들 이조판서 김휘(金徽), 숙종 때의 저명한 시인 김득신(金得臣), 무장이자 영의정에 추증된 김응하(金應河)와 훈련대장 김응해(金應海) 형제, 훈련대장 김중기(金重器) 등 이루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인재들이 나라에 공헌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 민족의 큰 스승이신 독립운동가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 또한 구안동김씨 출신이라는 사실! 이는 구안동김씨 가문의 자랑스러운 역사라 할 수 있겠습니다.

구안동김씨 항렬표에 대하여

항렬(行列)이란 같은 혈족 안에서 세대 간의 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이름의 특정 위치에 돌림자를 사용하는 문중의 약속입니다. 구안동김씨 역시 이러한 항렬 체계를 따르고 있으며, 항렬자를 통해 가문 내에서의 세대 위치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다만, 구안동김씨의 항렬표는 워낙 분파가 다양하고 각 파마다 사용하는 항렬자가 다를 수 있으므로, 이 자리에서 모든 항렬을 상세히 열거하기는 어렵습니다. 가장 정확한 정보는 해당 파의 종친회에 문의하시거나, 안동김씨 대종회 또는 각 파에서 발간한 족보를 참고하시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최근에는 인터넷 족보 서비스를 통해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를 활용해 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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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별 인터넷 족보 종친회 항렬 조회하기

이번 포스팅에서는 성씨별 인터넷 족보 및 종친회 조회에 대해 분석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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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안동김씨: 조선 후기 역사의 중심에 서다

신 안동김씨는 고려 개국공신 김선평을 시조로 하며, 특히 조선 후기에 세도정치를 통해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며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시조 김선평(金宣平)과 중시조 김극효(金克孝)

신안동김씨의 시조는 신라 말 경애왕 때 고창(안동의 옛 지명)의 성주였던 김선평(金宣平)입니다. 그는 927년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를 침공하여 경애왕을 시해하자, 930년 고려 태조 왕건과 힘을 합쳐 병산대첩에서 후백제군을 격파하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이 공로로 왕건으로부터 태광태사(太匡太師)의 벼슬을 받고 개국공신에 책록되었으며, 그의 후손들은 이를 기려 본관을 안동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이후 조선 중기에 이르러 김극효(金克孝)를 중시조로 삼으면서 신안동김씨는 다시 한번 가문의 중흥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의 후손들이 조선 후기 세도가문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으니, 참으로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조선 후기, 신안동김씨의 번영과 세도정치

신안동김씨는 김극효의 후손들이 크게 번성하면서, 특히 조선 후기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문으로 부상합니다. 좌의정을 지낸 김상헌(金尙憲)의 후손들은 순조, 헌종, 철종 3대에 걸쳐 왕비 3명(순원왕후, 효현왕후, 철인왕후)을 배출하며 이른바 '안동김씨 세도정치'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시기 신안동김씨는 부자 영의정, 형제 영의정, 부자 대제학 등 12명의 정승과 수십 명의 판서를 배출하며 권력의 정점에 섰습니다. 물론 세도정치는 여러 정치적 폐단을 낳기도 했지만, 당시 신안동김씨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신안동김씨가 배출한 역사적 인물들

신안동김씨 역시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습니다. 조선 후기 개화사상의 선구자였던 김옥균(金玉均),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김완규(金完圭), 그리고 청산리대첩의 영웅으로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김좌진(金佐鎭) 장군 또한 신안동김씨 출신입니다! 이처럼 신안동김씨는 역사의 격동기마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민족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신안동김씨 항렬표에 대하여

신안동김씨 또한 구안동김씨와 마찬가지로 고유의 항렬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항렬은 가문의 질서를 유지하고 동족 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신안동김씨의 항렬 역시 각 분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정확한 정보는 신안동김씨 대종회나 해당 파의 종친회를 통해 확인하시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족보를 열람하거나 문의를 통해 자신의 항렬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뿌리를 찾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울진 지역 안동김씨의 특별한 화합: 구(舊)와 신(新)을 아우르다

참고 자료에 따르면,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는 안동김씨의 구(舊)와 신(新) 두 계통이 종친회를 통합하여 운영하는 매우 특이하고도 아름다운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이는 참으로 놀랍고도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울진 입향조와 그 역사적 배경

울진군지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울진 지역에 구안동김씨가 처음 입향한 것은 약 400년 전인 1595년(선조 29년)으로, 절충장군 김몽생(金夢生)이 그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분파조가 익원공(翼元公) 김사형으로 기록되어 있어 구안동 시조가 김숙승임이 명확해 보입니다. 신안동김씨는 그로부터 약 130년이 지난 1721년(경종 원년)에 김우상(金愚商)이 최초로 울진에 정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분의 묘소가 온정면 광품리에 위치한 것으로 보아, 온정 지역이 초기 정착지였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통합 종친회, 화합과 상생의 모범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울진 지역에서는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가 종친회를 통합하여 매년 읍·면 단위로 순회하며 회합을 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통합은 1971년, 당시 울진군수를 지낸 신안동 출신 김일규 군수가 재임 시절 신안동김씨 울진군종친회 결성을 주도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김일규 군수는 같은 김알지의 후손이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의 통합종친회를 발족시켰고, 그 아름다운 전통이 약 35년간 이어져 왔다고 하니, 이는 혈연을 넘어선 화합의 정신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말이지 감탄스럽습니다!

뿌리를 아는 자긍심, 미래를 여는 지혜

지금까지 안동김씨, 특히 구 안동김씨와 신 안동김씨의 역사와 족보, 그리고 항렬표의 중요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안동김씨는 수많은 인물을 배출하며 우리나라 역사 발전에 크게 기여한 명문가임에 틀림없습니다. 족보와 항렬은 단순히 과거의 기록을 넘어, 현재의 나를 있게 한 뿌리를 확인하고 미래를 살아갈 지혜와 자긍심을 얻게 하는 소중한 유산입니다. 비록 이 글에서 모든 항렬 정보를 제공해 드리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항렬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여정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안동김씨 후손 여러분께서는 이 글을 통해 가문에 대한 자부심을 더욱 고취하고, 그 훌륭한 전통을 이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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