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김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2025년 05월 23일 by 오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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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의성김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혹시 "나의 뿌리는 어디일까?" 궁금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성씨와 본관이 존재하며, 각 가문마다 고유한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신라 왕실의 후예이자 고려 태조의 외손으로 시작하여, 학문과 절의, 그리고 나라 사랑으로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의성김씨(義城金氏) 가문에 대해 깊이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의성김씨의 시조와 유래부터 주요 분파, 세대를 잇는 항렬, 그리고 가문을 빛낸 주요 인물들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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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성김씨, 그 시작과 뿌리를 찾아서: 시조 김석(金錫)과 본관 이야기

모든 가문에는 그 시작을 알리는 시조가 있듯, 의성김씨의 시조는 바로 김석(金錫) 입니다. 그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일부 기록에는 다섯째 아들)로 알려져 있으며, 더욱 특별한 점은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王建)의 딸인 낙랑공주(樂浪公主, 또는 신란공주 神鸞公主)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즉, 김석은 고려 태조의 외손이라는 빛나는 혈통을 자랑합니다.

김석은 고려 초 경종 때 나라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특히 국방을 튼튼히 하고 어려운 백성들을 구휼하는 데 앞장서, 그 공로를 인정받아 식읍 300호를 하사받고 의성군(義城君) 에 봉해졌습니다. 이후 그의 후손들은 김석이 봉해진 '의성(義城)'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 의성의 옛 이름이 문소(聞韶) 였기 때문에, 의성김씨는 문소김씨(聞韶金氏) 라고도 불린답니다. 본관인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은 원래 조문국(召文國)이라는 작은 나라였으나, 929년(고려 태조 12년) 후백제 견훤의 침입을 막다 장렬히 전사한 홍술(弘述)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의로운 성'이라는 뜻의 의성(義城) 으로 지명이 바뀌었다고 하니, 그 이름부터 충의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듯합니다.

2. 가지 많은 나무, 의성김씨의 주요 분파(分派)

의성김씨는 시조 김석 이후 여러 대를 거치며 크게 번성했습니다. 특히 시조의 8세손인 김공우(金公瑀)의 아들 대에서 가세가 확장되었으며, 주로 그의 아들들인 9세손을 중시조로 하여 여러 분파로 나뉘게 됩니다. 마치 큰 나무에서 여러 가지가 뻗어 나가듯, 의성김씨 역시 다양한 분파를 이루며 그 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분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김용비(金龍庇) 계열: 태자첨사(太子詹事)를 지낸 김용비를 중시조로 하며, 그의 후손들이 주축을 이루는 첨사공파(詹事公派) 가 대표적입니다. 세부적으로는 복사공파(김거두, 김거익), 예빈경공파(파조 김인회) 등으로 나뉩니다.
  • 김용필(金龍弼) 계열: 수사공(守司空)을 지낸 김용필을 중시조로 하는 수사공공파(守司空公派) 가 있습니다.
  • 김용주(金龍珠) 계열: 평장사(平章事)를 지냈고 충의(忠毅)라는 시호를 받은 김용주를 중시조로 하는 충의공파(忠毅公派) 가 있습니다. 이 계열에서 김용주의 후손 일부가 개성군에 봉해지면서 개성김씨(開城金氏) 로 분관하기도 했습니다.
  • 김성단(金成丹) 계열: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지낸 김성단을 중시조로 하는 찬성공파(贊成公派) 가 있습니다.
  • 김흥(金興) 계열: 김흥을 파조로 하는 선략장군공파(宣略將軍公派) 가 있습니다.

이 외에도 학문과 덕행으로 가문을 빛낸 인물을 중시조로 하는 여러 지파들이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조선시대의 대학자인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선생을 중시조로 하는 청계파(淸溪派), 약봉파(藥峯派), 학봉파(鶴峯派) 등이 있으며, 역시 조선시대의 명신이자 학자인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 선생을 중시조로 하는 귀봉파(龜峯派), 운암파(雲巖派), 남악파(南嶽派), 문절공파(매헌파 또는 매말파), 불구당파(不求堂派), 문경공파(文敬公派) 등이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분파는 의성김씨 가문이 얼마나 번성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며, 각 분파는 저마다의 역사와 전통을 소중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3. 세대를 이어가는 지혜, 의성김씨 항렬표(行列表)

우리나라의 족보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항렬(行列) 또는 돌림자 입니다. 항렬은 같은 혈족 사이에서 세대(世代表)를 명확히 하고, 위아래를 구분하기 위한 지혜로운 약속입니다. 이름의 특정 위치에 정해진 글자를 사용하여 동세대임을 표시하는 것인데요, 의성김씨 역시 대동항렬표(大同行列表)를 통해 그 질서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항렬자는 보통 오행(五行: 木, 火, 土, 金, 水)의 상생(相生) 원리에 따라 순환하며 만들어집니다. 아래에서 의성김씨 항렬표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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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별 인터넷 족보 종친회 항렬 조회하기

이번 포스팅에서는 성씨별 인터넷 족보 및 종친회 조회에 대해 분석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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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역사에 빛나는 별들, 의성김씨 주요 인물

의성김씨 가문은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수많은 학자와 관료를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을 다수 배출하며 '행동하는 명문'으로 그 이름을 떨쳤습니다. 가문을 빛낸 주요 인물들을 시대별로 살펴보겠습니다.

고려시대 인물

  • 김용비(金龍庇): 태자첨사이자 의성군으로, 홍건적의 침입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민심을 수습하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 김용필(金龍弼): 수사공을 지냈습니다.
  • 김용주(金龍珠): 평장사를 지냈으며, 여진의 침입을 막아낸 공으로 개성군에 봉해지기도 했습니다. (개성김씨 분관조)
  • 김훤(金晅): 찬성사를 역임했습니다.
  • 김거두(金居斗): 공조전서로 문장에도 뛰어났으며, 그의 아우 김거익(金居翼) 은 정당문학을 지냈으나 조선 건국 후 우의정 벼슬을 사양하고 절개를 지켰습니다.
  • 김광부(金光富): 합포도원수로서 왜구와의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 김성단(金成丹): 문하찬성사를 지낸 찬성공파의 파조입니다.
  • 김영렬(金英烈): 병조참판으로 박포의 난 때 왕을 호위한 공으로 사후 우의정에 추증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인물

조선시대에 들어 의성김씨는 더욱 찬란한 인물들을 배출하며 명문가의 위상을 공고히 했습니다.

  • 김안국(金安國, 1478~1543): 호는 모재(慕齋), 시호는 문경(文敬). 대제학과 좌찬성을 지낸 사림파의 거두로, 조광조와 함께 개혁 정치를 이끌었습니다. 성리학뿐만 아니라 천문, 병법, 국문학에도 능통했으며, 어린이를 위한 교재 「동몽선습」과 「이륜행실」을 편찬하고 「모재집」을 남겼습니다.
  • 김정국(金正國, 1485~1541): 호는 사재(思齋), 시호는 문목(文穆). 김안국의 동생으로 형조참판을 지냈습니다. 기묘사화에 연루되기도 했으며, 「성리대전절요」, 민간 의학서적인 「촌가구급방」 등을 저술했습니다.
  • 김성일(金誠一, 1538~1593): 호는 학봉(鶴峯), 시호는 문충(文忠). 퇴계 이황의 뛰어난 문인으로, 대사성과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했습니다. 임진왜란 발발 직전 통신부사로 일본에 다녀왔으며, 왜란이 터지자 경상도 초유사로 임명되어 의병을 독려하고 민심을 수습하는 데 온 힘을 다했습니다. 그의 기록인 「해사록」과 문집 「학봉집」은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습니다.
  • 임벽당 김씨(林碧堂 金氏, 1492~1549): 신사임당, 허난설헌과 더불어 조선 중기 3대 여류 시인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뛰어난 문학적 재능으로 아름다운 시들을 남겼습니다.
  • 김우옹(金宇顒, 1540~1603): 호는 동강(東岡), 시호는 문정(文貞). 대사헌과 이조판서를 지냈으며, 이황과 조식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습니다. 저서로는 「속강목」 등이 있습니다.
  • 김흥락(金興洛, 1827~1899): 호는 서산(瑞山). 조선 말기의 대학자로 영남 유림의 큰 스승으로 추앙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김용(선조실록 수찬 참여), 김지수(폐모론 반대), 김성구(강원도관찰사), 김방걸(대사간), 김굉(명필, 명문장가) 등 수많은 인물들이 학문과 관직에서 빛나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항일운동가 및 근현대 인물: 행동하는 명문

의성김씨 가문은 국난 극복에 헌신한 전통을 이어받아, 특히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며 '행동하는 명문'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경상북도 안동의 내앞(川前里) 문중을 중심으로 한 의성김씨들은 가산을 정리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고, 국내외에서 항일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단일 문중에서 가장 많은 독립유공훈장자를 배출한 가문 중 하나로 기록될 정도입니다.

  • 김도화(金道和)김하락(金河洛): 을미의병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며, 김하락은 남한산성을 점령하고 항일 투쟁 기록인 「정토일기」를 남겼습니다.
  • 김동삼(金東三, 1878~1937): 호는 일송(一松). 만주에서 경학사, 부민단, 서로군정서, 통의부, 정의부 등 독립운동 단체를 조직하고 이끌었습니다. 임시정부에도 참여하며 평생을 조국 독립에 헌신했습니다.
  • 김창숙(金昌淑, 1879~1962): 호는 심산(心山). 유림 대표로 파리장서운동을 주도했으며, 임시정부 의정원 부의장 등으로 활동했습니다. 광복 후에는 성균관대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학장을 지냈으며, 이승만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불굴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였습니다. 건국공로훈장 중장이 수여되었습니다.
  • 김용환(金龍煥): 학봉 김성일의 13대 종손으로, '파락호(破落戶)'로 위장하여 일제의 감시를 피하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비밀리에 지원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의 희생과 기지는 많은 독립운동가들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 김대락(金大洛): 경술국치 이후 일제의 탄압을 피해 가솔과 문중 사람들을 이끌고 만주로 집단 이주하여 신흥학교 설립을 돕는 등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기여했습니다.
  • 김근수(金根洙)와 부인 전월선(全月善): 부부가 함께 광복군으로 활동한 독립투사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맺어준 '부부 광복군'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김근수 선생은 김원웅 전 국회의원의 부친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의성김씨 가문은 역사 속에서 빛나는 학문적 업적과 더불어,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며 정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숭고한 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5. 의성김씨의 자취: 집성촌과 문화유산, 그리고 가문의 정신

오랜 역사만큼이나 의성김씨는 전국 곳곳에 그 자취를 남기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집성촌으로는 다음과 같은 곳들이 있습니다.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내앞마을): 의성김씨 학봉종택을 비롯한 고택들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빼어난 자연경관과 함께 전통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특히 이곳은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언급한 4대 길지 중 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 그 의미가 더욱 깊습니다.
  • 경상북도 의성군 일원 (본관 소재지)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신호리, 북안면 유상동, 임고면 사동 등
  • 대구광역시 달성군
  • 기타 경상북도, 강원도 일부 지역

의성김씨는 학문과 절의를 숭상하는 가풍을 대대로 이어왔습니다. 조선시대에만 문과 급제자를 96명이나 배출했다는 사실은 이 가문이 얼마나 학문에 힘썼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또한, 국난이 닥쳤을 때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구하는 데 앞장섰던 수많은 인물들은 의성김씨 가문의 '충(忠)'과 '의(義)' 정신을 대변합니다.

의성김씨 종택은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내앞마을)에 위치하며, 가문의 역사와 정신을 상징하는 중요한 공간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 의성김씨의 자랑스러운 역사

지금까지 의성김씨의 시조 김석으로부터 시작된 유구한 역사, 다양한 분파, 세대를 잇는 항렬, 그리고 나라와 사회에 큰 공헌을 한 주요 인물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신라 왕실과 고려 왕실의 혈통을 이어받아 학문과 덕행, 그리고 나라 사랑의 정신을 실천해 온 의성김씨 가문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귀감과 자긍심을 줍니다.

자신의 뿌리를 아는 것은 현재의 나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됩니다. 이 글을 통해 의성김씨 후손들께서는 가문에 대한 자부심을 더욱 높이시고, 다른 성씨를 가진 분들께서는 우리나라 성씨 문화의 다양성과 깊이를 느끼시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더욱 상세하고 정확한 정보는 각 문중에서 관리하는 족보나 관련 연구 자료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은 언제나 흥미롭고 의미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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