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나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2025년 05월 22일 by 오르야

    나주나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목차
반응형

나주나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나주나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안녕하세요! 오늘은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도시, 전라남도 나주를 본관으로 하는 나주나씨(羅州羅氏) 가문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나주" 하면 달콤한 배,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과 함께 풍요로운 역사의 향기가 느껴지는데요. 바로 이곳에 뿌리를 둔 나주나씨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요?

우리나라의 성씨는 단순한 이름표를 넘어, 그 자체로 한 편의 역사서와 같습니다. 특히 나주나씨는 중국에서 건너온 시조로부터 시작하여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나주나씨 시조와 그 유래, 빛나는 조상들의 이야기, 다양한 파(派)의 형성 과정, 세대를 셔츠는 족보와 돌림자(항렬)의 의미, 그리고 역사와 현대를 빛낸 나주나씨 인물들까지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혹시 주변에 나씨 성을 가진 분이 계시거나, 본인이 나주나씨라면 더욱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 나주나씨의 유구한 역사 속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 나주 나씨 족보 돌림자 조회하기 ◀

반응형

1. 나주나씨의 시작: 시조 나부(羅富)와 본관 나주(羅州) 이야기

모든 가문에는 그 시작을 알리는 시조가 있기 마련입니다. 나주나씨 시조는 중국 송나라 예장(豫章, 현재 중국 장시성) 출신의 나부(羅富)입니다.

시조 나부(羅富), 고려에 뿌리내리다

나부 공은 송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봉명사신(奉命使臣), 즉 나라의 명을 받든 사신으로 고려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송나라가 멸망하면서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고, 결국 고려에 귀화하여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게 됩니다. 그가 처음 정착한 곳은 전라도 여황현(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 일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부 공은 뛰어난 인품과 덕망으로 주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호남 지방에서 명망 높은 가문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고려 조정에서도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무관직인 감문위상장군(監門衛上將軍, 정3품)을 지냈습니다. 감문위는 궁궐의 수비를 담당하는 중요한 부서였고, 상장군은 그 책임자였으니 그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주나씨는 머나먼 타국에서 온 시조로부터 시작되어 한반도에 깊이 뿌리내리게 된 것입니다.

본관 나주(羅州)의 유래와 의미

나주나씨의 본관인 나주(羅州)는 전라남도의 중심 도시 중 하나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곳입니다.

  • 역사 속의 나주: 본래 백제 시대에는 발라현(發羅縣)이라 불렸고, 통일신라 신문왕 때는 금산군(錦山郡)으로 바뀌며 금성(錦城)이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이후 후백제의 견훤이 이곳을 차지했다가, 후고구려의 궁예가 왕건을 보내 점령하면서 비로소 '나주'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려시대에도 나주라는 명칭은 그대로 사용되었으며, 성종 14년에는 절도사를 두고 진해군(鎭海軍)이라 칭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현종 때는 거란의 침입으로 왕이 이곳 나주까지 피난했다가 돌아간 후,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어 목(牧)으로 승격되기도 했습니다.
  • 나주나씨와 나주: 나주나씨가 나주를 관향으로 삼게 된 것은 조선 초기로 추정됩니다. 시조 나부 공이 처음 정착했던 여황현이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나주에 합병되면서, 자연스럽게 나주가 후손들의 본관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나주'라는 지명 자체가 '비단 금(錦)'자와 연관된 '금성'으로 불렸던 만큼, 아름답고 풍요로운 땅의 이미지를 담고 있으며, 나주나씨에게는 가문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2. 세계(世系)와 빛나는 분파: 주요 파(派) 알아보기

나주나씨는 시조 나부 이후 선대(先代)의 기록을 명확히 고증하기 어려워, 고려시대에 영동정(令同正)을 지낸 나득규(羅得虬)를 1세조, 즉 중시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나득규로부터 4세인 나수영(羅守永) 대에 이르기까지는 독자(獨子)로 가계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나수영이 다섯 아들을 두었고, 이 아들들이 모두 관직에 나아가 가문을 빛내면서 이들을 각 파의 파조(派祖)로 하는 5대파(五大派)로 분파되었습니다. 마치 큰 나무의 줄기에서 여러 가지가 뻗어 나가듯, 나주나씨도 여러 파로 나뉘어 더욱 번성하게 된 것입니다.

각 주요 파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전서공파(典書公派): 파조는 나위(羅位)입니다. 그는 고려 말 호조전서(戶曹典書, 오늘날의 재정경제부 장관급)를 지냈습니다. 후손들은 주로 평안도 용강, 성천 일대에 세거지를 형성했습니다.
  • 시랑공파(侍郞公派): 파조는 나계(羅桂)입니다. 그는 중서시랑(中書侍郞, 고려시대 중앙 관청의 차관급)을 역임했습니다. 후손들은 주로 경기도 강화 지역을 중심으로 터를 잡았습니다.
  • 금양군파(錦陽君派): 파조는 나석(羅碩)입니다. 그는 사온서직장(司醞署直長)과 영동정(令同正)을 지냈고, 금양군(錦陽君)에 봉해졌습니다. 후손들은 주로 전라도 김제 일대에 많이 거주했습니다.
  • 연안군파(延安君派): 파조는 나세(羅世)입니다. 그는 연안군(延安君)에 봉해졌으며, 우왕 6년(1380년)에는 해도원수(海道元帥)로서 진포(지금의 군산)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르는 공을 세워(진포대첩) 나라를 지켰습니다. 이후 문하평리(門下評理)라는 높은 관직에 올랐습니다. 후손들은 주로 충청도 서천 지역에 집성촌을 이루었습니다.
  • 직장공파(直長公派): 파조는 나원(羅源)입니다. 그는 사온서직장(司醞署直長) 동정(同正)을 지냈습니다. 후손들은 주로 본관지인 전라도 나주 일대에 많이 살았습니다.

이처럼 나주나씨는 5대파를 중심으로 각기 다른 지역에서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며 번창해왔습니다. 각 파는 저마다의 특색을 지니면서도 '나주나씨'라는 하나의 뿌리 아래 뭉쳐있습니다.

3. 나주나씨의 족보와 항렬: 세대를 잇는 지혜

우리나라의 성씨 문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족보(族譜)와 항렬(行列)입니다. 나주나씨 역시 족보를 통해 가문의 역사와 혈연관계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항렬자를 사용하여 세대 간의 관계를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족보: 가문의 역사책

족보는 한 가문의 시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족 구성원의 이름, 생몰년월일, 관직, 배우자, 자녀 등을 기록한 책입니다. 단순한 가족 명부를 넘어, 가문의 유래, 주요 인물들의 업적, 이주 역사 등 방대한 정보를 담고 있어 '가문의 역사책'이라 불립니다. 나주나씨 족보는 이러한 기록을 통해 후손들이 자신의 뿌리를 알고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항렬자(行列字): 이름 속에 담긴 약속

항렬자는 같은 혈족 사이의 세대 관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이름의 한 글자에 넣어 쓰는 글자입니다. 보통 돌림자라고도 부르며, 아들 세대, 손자 세대 등 정해진 규칙에 따라 특정 글자를 사용합니다. 항렬자를 보면 그 사람이 몇 세손인지, 그리고 같은 세대 내에서는 형제 서열이 어떻게 되는지 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 나주 나씨 족보 항렬표 조회하기 ◀

4. 역사와 현대를 빛낸 나주나씨 인물들

나주나씨는 고려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인물들을 배출하며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해왔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27명을 비롯해 무과, 생원·진사시 합격자를 다수 배출하며 학문과 무예를 겸비한 가문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여기서는 역사 속 인물부터 우리가 잘 아는 현대의 유명인까지, 나주나씨를 빛낸 주요 인물들을 간략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자 이름 병기)

<고려 및 조선시대 주요 인물>

  • 나공언(羅公彦): 공조전서 나진(羅璡)의 아들로, 전농시정(典農寺正)을 지냈습니다. 1381년(고려 우왕 7)에는 무등산에서 왜구를 섬멸하는 공을 세웠습니다.
  • 나득강(羅得康, 1378~1444): 조선 전기 문신으로, 전라도 김제 출신입니다. 1419년(세종 1)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정랑, 의금부지사 등을 역임했으며, 이조판서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한 일화로도 유명합니다.
  • 나덕헌(羅德憲, 1573~1640): 조선 중기의 용맹한 무신입니다. 1603년 무과에 급제한 후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에 봉해졌습니다. 길주목사, 의주부윤 등을 지냈고, 병자호란 후에는 도통어사로 특진되었습니다. 시호는 충렬(忠烈)입니다.
  • 나무춘(羅茂春, 1580~1619): 조선 중기 문신으로, 1612년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감찰을 지냈으며, 사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습니다. 담양 구산사(龜山祠)에 모셔져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있습니다.
  • 나위소(羅緯素, 1583~1667): 조선 중기 문신으로, 1623년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정랑, 경주부윤 등을 역임하며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 숙의 나씨(淑儀 羅氏): 조선 중종의 후궁으로, 왕실의 일원이었습니다.

<근현대 주요 인물>

  • 나철(羅喆, 1863~1916): 본명은 나인영(羅寅永). 일제강점기 민족정신을 일깨운 대종교의 창시자이자 독립운동가입니다.
  • 나중소(羅仲昭, 1867~1928): 독립운동가로, 북로군정서 참모장, 신민부 참모부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무장 독립 투쟁을 이끌었습니다.
  • 나용균(羅容均, 1895~1984):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제6대 보건사회부 장관과 제4·5·6대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 나혜석(羅蕙錫, 1896~1948):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작가, 시대를 앞서간 여성운동가로 평가받습니다.
  • 나운규(羅雲奎, 1902~1937): 영화감독 겸 배우로, 한국 영화의 선구자입니다. 대표작으로 민족의 아픔을 그린 '아리랑'이 있습니다.
  • 나익진(羅翼鎭, 1877~1945): 근대 기업인이자 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며 경제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 나항윤(羅恒潤, 1918~1993): 법조인으로, 제7대 대법원장을 지내며 사법부 발전에 공헌했습니다.
  • 나운영(羅運榮, 1922~1993): 작곡가이자 음악 교육자로, 한국 현대 음악계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 나길조(羅吉祖, 1923~2008): 법조인으로 대법원 판사를 지냈고, 제11대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 나상목(羅相沐, 1924~1999): 한국화가로, 원광대학교 미술대학장을 역임했으며, 김제 벽골제에 벽천미술관을 기증했습니다.
  • 나병선(羅柄扇, 1934~ ): 정치인으로, 제14대 국회의원과 한국석유공사 사장을 지냈습니다.
  • 나웅배(羅雄培, 1934~ ): 경제관료 출신 정치인으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과 제11~14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습니다.
  • 라종일(羅鍾一, 1940~ ): 외교관이자 정치학자로,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보좌관, 주영대사, 주일대사 등 요직을 거쳤습니다. (성씨 표기법에 따라 '라'로 표기)
  • 나문희(羅文姬, 1941~ ): 본명은 나경자(羅敬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 배우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감동과 웃음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 나경원(羅卿瑗, 1963~ ): 판사 출신의 정치인으로, 전 국회의원으로서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쳤습니다.
  • 나인우(羅人友, 1994~ ): 본명은 나종찬(羅鐘贊).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젊은 배우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나주나씨 후손들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며 가문을 빛내고 있습니다.

<나주나씨 집성촌>

나주나씨는 전국 각지에 분포하여 살고 있지만, 특히 다음과 같은 지역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습니다.

  • 전라남도 영암군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충청남도 서천군

뿌리 깊은 나무, 나주나씨의 내일을 기대하며

지금까지 나주나씨의 시조와 유래, 본관, 주요 파, 족보와 항렬, 그리고 역사 속 인물들과 현대의 자랑스러운 후손들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중국에서 건너와 고려에 정착한 시조 나부로부터 시작된 나주나씨의 역사는 격동의 시대를 거치면서도 굳건히 그 뿌리를 지켜왔습니다.

자신의 성씨와 가문의 역사를 아는 것은, 마치 거대한 나무의 가지와 잎이 자신의 뿌리를 기억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개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며, 선조들의 지혜와 삶의 교훈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힘을 얻게 합니다.

나주나씨 후손이라면 이번 기회를 통해 가문에 대한 자긍심을 더욱 깊이 느끼셨기를 바랍니다. 또한, 나주나씨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다양한 성씨와 그 속에 담긴 풍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유구한 전통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발전해 나갈 나주나씨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며 오늘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 자료: 나주나씨 대종회 웹사이트, 위키백과 "나주 나씨", 나무위키 "나주 나씨"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