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양진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2025년 05월 21일 by 오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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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양진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여양진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안녕하세요! 오늘은 한국의 유서 깊은 성씨 중 하나인 여양진씨(驪陽陳氏)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나의 뿌리를 찾는 여정은 언제나 흥미롭고 의미 있는 일인데요. 특히 여양진씨는 고려 시대부터 명문가의 맥을 이어온 가문으로, 역사 속 굵직한 인물들을 다수 배출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여양진씨의 시조와 본관 이야기부터 주요 분파, 항렬자,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문을 빛낸 인물들까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혹시 주변에 여양진씨 성을 가진 분이 있다면, 이 글을 공유하며 함께 이야기꽃을 피워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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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양진씨의 시작: 시조 진총후와 본관 여양

모든 성씨 이야기의 시작은 시조와 본관에서 출발합니다. 여양진씨의 시조는 진총후(陳寵厚)입니다. 그는 고려 예종 때 호분위대장군(虎賁衛大將軍)을 지냈으며, 1126년(인종 4년) 이자겸의 난을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에 오르고 여양군(驪陽君)에 봉해졌습니다. 이로써 후손들이 진총후를 시조로, 여양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게 된 것입니다.

본관 여양(驪陽)은 현재의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일대의 고려 시대 지명입니다. 이곳은 백제 시대에는 사시랑현(沙尸良縣) 또는 사라현(沙羅縣)으로 불렸고, 신라 경덕왕 때는 신량현(新良縣)으로 개칭되어 결성군(結城郡)에 속했습니다.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여양현(驪陽縣)으로 개칭되었으며, 조선 태조 4년(1395년)에 폐현되어 홍주군에 편입되었습니다. 이처럼 여양진씨의 본관은 깊은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양진씨의 유래에 대한 여러 이야기

여양진씨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 진수 동래설: 북송(北宋) 복주(福州) 출신의 진수(陳琇)라는 인물이 고려로 망명하여 여양현 덕양산 아래 터를 잡고 살았으며, 진총후가 그의 후손이라는 설입니다. 하지만 여양진씨 대종회에서는 이 설에 대한 확증이 없다고 밝히고 있으며, 족보에는 진총후를 시조로 명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 토착 성씨설: 백제 동성왕 때의 인물 진명(陳明)이나 백제 유민 진법자(陳法子) 등의 기록을 통해 백제 시대부터 한반도에 진씨가 존재했음이 확인됩니다. 또한 고려 초기에도 진선(陳瑄), 진림(陳林) 등의 인물 기록이 있어, 진총후 이전부터 진씨가 한반도에 뿌리내리고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여러 설은 여양진씨의 역사적 깊이를 더해주지만, 공식적으로는 진총후를 시조로 모시고 있습니다. 시조 진총후의 아들 진준(陳俊)은 무신정변이라는 혼란기에 문신들을 보호하여 음덕을 쌓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의 다섯 아들과 다섯 손자가 모두 요직에 오르면서 가문의 기틀을 더욱 굳건히 다졌다고 전해집니다.

여양진씨의 주요 분파: 5대파를 중심으로

여양진씨는 시조 진총후의 증손 대에서 크게 5개의 파로 나뉩니다. 이 5대파를 기점으로 상계(上系)가 시작되며, 이들 파에서 다시 여러 중계(中系)와 하계(下系)로 분파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각 파조와 그들의 주요 경력은 하단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파명파조(派祖)주요 경력

시중공파(侍中公派) 진담(陳湛) 문하시중 역임
어사공파(御史公派) 진식(陳湜) 어사대부 역임
예빈경파(禮賓卿派) 진온(陳溫) 예빈경 역임
매호공파(梅湖公派) 진화(陳澕) 지공주사 역임, 호 매호
전농공파(典農公派) 진택(陳澤) 판전농시사 역임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할 때, 어느 파에 속하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첫걸음이 됩니다. 각 파는 고유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며 여양진씨 가문의 다양성을 보여줍니다.

여양진씨를 빛낸 인물들: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양진씨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해 왔습니다.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인물들을 만나보겠습니다.

역사 속 여양진씨 인물

  • 진준(陳俊): 고려 명종 때 참지정사, 판병부사를 역임하며 국정을 이끌었습니다.
  • 진화(陳澕): 고려 시대의 뛰어난 문신이자 문장가로, 우사간, 지제고 등을 역임했습니다. 그의 호를 딴 매호공파의 파조이기도 합니다.
  • 진준(陳遵): 조선 세종 때 우사간대부, 공조참의를 지내며 조선 초기 안정에 기여했습니다.
  • 진중성(陳仲誠): 조선 초기 형조참판을 역임하고 원종공신에 책록된 인물입니다.
  • 진복창(陳復昌): 조선 중기 대사헌, 공조참판 등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 진식(陳寔): 조선 명종 때 대사간, 호조참의, 부제학 등을 역임하며 학문과 정치에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 진극원(陳克元): 조선 중기의 학자로, 남명 조식의 문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진채선(陳彩仙): 조선 말기 판소리 역사상 최초의 여성 명창으로, 신재효의 제자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현대 사회의 여양진씨 인물

현대에 들어서도 여양진씨 인물들은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 등 각계각층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 진헌식(陳憲植): 제헌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으며,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 진의종(陳懿鍾): 제17대 국무총리를 지낸 인물입니다.
  • 진념(陳稔):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하며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 진대제(陳大濟):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하며 IT 강국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 진동수(陳棟洙): 금융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 진영(陳永): 행정안전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 진수희(陳壽姬):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 진중권(陳重權): 날카로운 시사평론과 깊이 있는 미학 연구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 진선미(陳善美):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여성가족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 진선유(陳善有):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전설적인 선수로,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 진갑용(陳甲龍): 프로야구 선수 및 코치로 활약하며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 진종오(陳鍾五): 사격 국가대표 선수로, 올림픽에서 다수의 금메달을 획득한 살아있는 전설입니다. (일부 자료에서 언급되며, 교차 확인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 진지희(陳지희): 아역 배우로 시작하여 성인 연기자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한 배우입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여양진씨 인물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가문을 빛내고 있습니다.

여양진씨의 항렬자(行列字): 세대와 이름을 잇는 약속

항렬자는 같은 혈족 안에서 세대(世代表)를 나타내는 글자로, 이름에 돌려 쓰는 글자입니다. 여양진씨는 1914년 갑인대동보(甲寅大同譜) 이전에는 각 파별로 다른 항렬을 사용했으나, 이후 통일된 항렬자를 정하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1967년 발간된 정미대동보(丁未大同譜)부터는 천간(天干: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과 오행(五行: 木火土金水)을 각각 두 항렬씩 번갈아 사용하는 방식으로 항렬을 정하고 있습니다. 이름 두 글자 중 한 글자를 위(상명자)에 사용하고, 다음 세대에서는 아래(하명자)에 항렬자를 사용하는 규칙을 따릅니다. 여양진씨의 주요 항렬도는 하단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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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양진씨 족보와 집성촌

여양진씨는 가문의 역사를 기록하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 여러 차례 대동보(大同譜)를 발간해 왔습니다. 대표적으로 1914년의 갑인대동보, 1967년의 정미대동보 등이 있으며, 현재도 꾸준히 족보 편찬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양진씨 대종회 홈페이지를 방문하시면 족보 발간 내역 등 더 자세한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주요 집성촌(集姓村)은 다음과 같습니다.

  • 세종특별자치시 반곡동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원암리
  •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삼기면 용연리, 고창군 일대
  • 충청북도 옥천군 청성면 묘금리
  • 전라남도 담양군 봉산면 신학리, 곡성군 고달면 목동리
  •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횡성읍 청룡리
  •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이룡리, 거제시 동부면 학동리, 합천군 청덕면 소례리
  •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동산리

물론 위에 언급된 곳 외에도 전국 각지에 여양진씨 후손들이 분포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혹시 여행 중에 이러한 집성촌을 지나게 된다면, 그 지역에 얽힌 여양진씨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여양진씨의 역사를 기억하며

지금까지 여양진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 주요 분파, 대표적인 인물, 그리고 항렬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를 살펴보았습니다.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 온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인물들을 통해 여양진씨가 우리 역사에 남긴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뿌리를 알고 이해하는 것은 현재의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됩니다. 여양진씨 후손이라면 자긍심을 갖고, 앞으로도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는 데 기여하시길 바랍니다. 이 글이 여양진씨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자신의 뿌리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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