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원윤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목차
안녕하세요! 오늘은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인물들을 배출해 온 명문 성씨, 칠원윤씨(漆原尹氏)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혹시 자신의 뿌리가 칠원윤씨이신가요? 혹은 주변에 칠원윤씨 성을 가진 분이 계신가요? 오늘 이 글을 통해 칠원윤씨의 시조부터 본관의 역사, 다양한 분파 이야기, 그리고 자랑스러운 조상님들과 현대의 유명 인물들까지! 칠원윤씨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풀어드리겠습니다. 함께 우리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흥미로운 여정에 동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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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칠원윤씨의 시작: 시조 윤시영과 중시조 윤거부 이야기
모든 가문에는 그 시작을 알리는 시조가 있듯이, 칠원윤씨의 문을 연 분은 바로 윤시영(尹始榮) 할아버지입니다. 신라 태종무열왕 시절,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높은 벼슬인 태자태사(太子太師)를 지내셨다고 전해집니다.
흥미로운 것은 윤시영 할아버지의 탄생 설화인데요. 《경신보(庚申譜)》 상계편(上系篇)에 따르면, 칠원현(현재 경남 함안군 칠원읍 일대)에 살던 윤씨 부인이 꿈에서 신비로운 사람을 만났는데, "아이를 낳거든 이름을 시영(始榮)이라 하라"는 계시를 받고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정말 신비롭지 않나요? 또한, 《경신보》 세록편(世錄遍)에는 윤시영 할아버지가 칠원백(漆原伯) 또는 호장랑(戶長郞)을 지냈고, 무려 7대에 걸쳐 봉군(封君)되었다는 기록도 남아있어 가문의 초기 위상을 짐작하게 합니다.
윤시영 할아버지의 아들인 윤황(尹璜)은 판태사국사(判太史局事)를 지냈으나, 안타깝게도 그 이후의 세계(世系,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계통)가 실전(失傳)되어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칠원윤씨는 고려 시대에 칠원현의 호장보윤(戶長甫尹)을 지내신 윤거부(尹鉅富) 할아버지를 중시조(中始祖)이자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칠원(漆原), 우리 본관은 어디일까요?
칠원윤씨의 본관인 칠원(漆原)은 현재의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일대를 가리킵니다. 이 지역은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 백제 시대: 칠토현(漆吐縣)
- 신라 경덕왕 16년(757년): 칠제(漆隄)로 바뀌고 의안군(現 창원)에 속함
- 고려 초: 지금의 이름인 칠원(漆原)으로 개칭
- 고려 현종 9년(1018년): 김해(金海)에 예속
- 고려 공양왕 2년(1390년): 감무(監務)가 설치되어 행정적으로 중요해짐
- 조선 태종 13년(1413년): 현감(縣監)이 설치
- 조선 선조 32년(1599년): 잠시 창원(昌原)에 합쳐졌다가
- 조선 광해군 9년(1617년): 다시 현(縣)으로 독립
- 조선 고종 32년(1895년): 칠원군으로 승격
- 1914년 일제강점기 군면 폐합: 함안군(咸安郡)에 편입되어 현재의 칠원면, 칠서면, 칠북면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칠원이라는 땅은 오랜 역사 속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며 칠원윤씨 가문의 뿌리가 되어주었습니다.
2. 가지를 뻗어 번성하다: 칠원윤씨의 주요 분파(分派)
중시조 윤거부 할아버지의 16세손인 윤수(尹秀) 할아버지는 고려 충렬왕 때 군부판서(軍簿判書) 및 응양군상호군(鷹揚軍上護軍)이라는 높은 벼슬을 지내셨습니다. 그분의 아들 3형제 중 둘째 아들인 윤길보(尹吉甫) 할아버지 또한 응양군 대호군을 역임하셨죠. 바로 이 윤길보 할아버지의 아들 다섯 형제가 각각 파조(派祖)가 되어 칠원윤씨의 큰 줄기인 5대 파를 형성하게 됩니다. 여기에 장군공파가 더해져 더욱 번성하게 됩니다.
각 분파와 파조를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 충효공파(忠孝公派): 파조 윤환(尹桓, ? ~ 1387)
- 고려 말 문신으로, 칠원백(漆原伯)에 봉해지고 문하시중을 지내셨습니다. 세 번이나 재상의 자리에 오르셨고, 특히 빈민 구제에 힘쓰신 어진 분이셨습니다.
- 안타깝게도 슬하에 자녀가 없어 둘째 동생인 칠성부원군(윤장)의 둘째 아들 천효(千孝)를 양자로 삼으셨습니다. 이후 판결사공파(윤조생), 생원공파(윤신생), 낭장공파(윤광우) 등으로 이어집니다.
- 판결사공파는 다시 사직공계(윤연), 충순위공계(윤적, 하동파), 집현전교리지제교계(윤형, 막곡파), 군수공계(윤신노, 지곡파), 사직공계(윤신충 - 춘천파, 해대파, 오산파) 등으로 나뉩니다.
- 생원공파는 충청파(맹산공파, 승사랑공파, 전적공파, 동지사공파, 진사공파)와 거제파(진사공파 - 다공계, 명진계, 아주계) 등으로 이어집니다.
- 대언공파(代言公派): 파조 윤자(尹樜)
- 후손은 큰아들 양성당공파(파조 윤지)와 작은아들 순수공파(파조 윤사)로 나뉩니다.
- 양성당공파는 생원공파, 군수공파, 대제학공파 등으로,
- 순수공파는 생원공파, 판관공파, 집의공파, 송월암공파 등으로 분화되었습니다.
- 후손은 큰아들 양성당공파(파조 윤지)와 작은아들 순수공파(파조 윤사)로 나뉩니다.
- 칠성공파(漆城公派) / 칠성군파(漆城君派): 파조 윤장(尹樟)
- 군호는 칠성부원군(漆城府院君)이십니다.
- 사윤공파(司尹公派): 파조 윤화(尹樺)
- 벼슬은 좌사윤(左司尹)을 지내셨습니다.
- 부원군파(府院君派): 파조 윤공(尹椌)
- 칠원부원군(漆原府院君)에 봉해지셨습니다.
- 장군공파(將軍公派): 파조 윤계유(尹繼葇)
- 충효공 윤환의 당질(堂姪, 사촌 형제의 아들)이시며, 대장군(大將軍) 벼슬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분파로 나뉘어 각기 번성하며 칠원윤씨 가문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뿌리가 어느 파에 속하는지 알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3. 이름 속에 담긴 약속: 칠원윤씨 항렬표(行列表)
우리나라의 족보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항렬(行列)입니다. 항렬은 같은 혈족 사이의 세계(世系)를 분명히 하고, 이름만 들어도 대략적인 세대와 관계를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칠원윤씨 역시 고유의 항렬자를 사용하여 대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칠원윤씨 항렬표는 하단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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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역사를 빛낸 칠원윤씨 인물들: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자랑스러운 이름
칠원윤씨 가문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나라에 공헌해 왔습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칠원윤씨의 이름을 빛낸 분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고려시대의 주요 인물
- 윤수(尹秀): 군부판서, 응양군상호군을 역임하며 고려 왕실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칠원윤씨 분파의 중요한 기점이 되는 분입니다.
- 윤길보(尹吉甫): 윤수의 아들로 응양군 대호군을 지냈으며, 충의공(忠義公)이라는 시호를 받고 구성군(龜城君)에 봉해졌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칠원윤씨 5대 파의 파조가 되었습니다.
- 윤환(尹桓): 충효공파의 파조로, 칠원백에 봉해지고 문하시중을 지낸 고려 말의 명재상이었습니다. 백성을 아끼고 선정을 베푼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조선시대의 주요 인물
조선시대에는 더욱 많은 칠원윤씨 인물들이 정계, 학계 등에서 활약했습니다.
- 윤저(尹抵, ? ~ 1412): 정경공. 조선 개국공신으로 상장군, 찬성사를 역임하고 칠원군에 봉해졌습니다. 조선 건국 초기에 큰 공을 세운 인물입니다.
- 윤자당(尹子當, ? ~ 1422): 정평공. 태종 때 공신으로 칠원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왕실의 안정과 국가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 윤자량(尹子良): 충간공. 태종 때 홍문관 대제학, 한성판윤 등 요직을 두루 거친 학자이자 관료였습니다.
- 윤지(尹志): 호는 양성당. 세종 때 집현전 학사로 활동하며 『치평요람』 편찬에 참여하는 등 학문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대사간을 지냈으며 청백리로도 이름이 높았으나, 세조의 왕위 찬탈 후에는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곧은 절개의 소유자였습니다.
- 윤석보(尹碩輔, ? ~ 1505): 호는 지퇴당.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직제학, 대사간 등을 역임했습니다. 청백리로 명성이 높았으나, 안타깝게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사후 도승지로 추증되었습니다.
- 윤풍형(尹豊亨): 호는 송월당. 윤석보의 아들로, 강원도 관찰사와 부제학을 지냈습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학문과 행정에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 윤탁연(尹卓然, 1538~1594): 헌민공. 윤석보의 증손으로,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했으며 형조판서와 이조판서를 역임했습니다. 광국공신 3등으로 칠계군(漆溪君)에 봉해졌으며, 임진왜란 중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순직한 충신입니다. 그의 저서 『계사일록(癸巳日錄)』은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 윤지술(尹志述): 숙종 때의 유생으로, 신임사화 때 화를 입었습니다. 당시 옳고 그름을 용감하게 외쳤던 "삼포의(三布衣)" 중 한 명으로 불리며 그의 의기가 높이 평가됩니다.
근현대의 자랑스러운 칠원윤씨 인물들 (항렬 순)
칠원윤씨의 빛나는 역사는 현대로도 이어져,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이 많습니다.
- 37세 병(炳), 형(炯) 항렬
- 윤병한(尹炳漢): 제5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대한민국 정치 발전에 기여하셨습니다.
- 윤성이(尹聖二): 제19대 동국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며 교육계에 헌신하셨습니다.
- 윤병인(尹炳仁): 태권도 초대 5대관 중 YMCA 권법부 창시자로, 대한민국 무술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 38세 원(遠), 규(逵) 항렬
- 윤무부(尹無珷): "새 박사님"으로 유명한 조류학자이시며, 경희대학교 생물학과 명예교수로서 환경 보호와 자연 사랑을 널리 알리셨습니다.
- 윤영(尹瑛): 제18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국민을 위해 봉사하셨습니다.
- 윤일규(尹一逵): 제20대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치셨습니다.
- 39세 종(鍾), 호(鎬) 항렬
- 윤종빈(尹鍾彬): 영화 <범죄와의 전쟁>, <공작> 등을 연출한 대한민국 대표 영화감독입니다.
- 윤종신(尹鍾信): 가수, 작곡가, 방송인으로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대중의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음악과 재치 있는 입담은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 윤종오(尹鍾五): 제20대 및 제22대 국회의원이자 민선 5기 울산광역시 북구청장을 지내며 지역사회 발전에 힘썼습니다.
- 40세 순(淳), 수(洙) 항렬
- 윤윤수(尹潤洙): ㈜휠라홀딩스 회장으로, 대한민국 경제계에서 주목받는 경영인입니다.
- 41세 상(相), 주(柱) 항렬
- 윤상현(尹相現): 제18, 19, 20, 21, 22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다선 의원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전 사위이기도 합니다.)
- 윤이상(尹伊桑): 세계적인 작곡가로, 동서양의 음악을 융합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선보이며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족보명은 윤상영 尹相永)
- 44세 흠(欽), 진(鎭) 항렬
- ASH ISLAND (애쉬 아일랜드): 본명 윤진영(尹鎭煐). 젊은 세대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실력파 래퍼입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칠원윤씨 인물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 현황
칠원윤씨 가문은 학문에도 능하여 조선시대에 많은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습니다.
- 문과: 27명
- 무과: 22명
- 사마시 (생원·진사과): 44명
총 93명에 달하는 급제자를 배출하여 가문의 학문적 전통과 뛰어난 역량을 보여줍니다.
5. 칠원윤씨의 삶의 터전: 집성촌과 관련 유적
칠원윤씨는 오랜 역사 동안 전국 각지에 뿌리내리며 살아왔습니다. 주요 집성촌(集姓村, 한 성씨가 모여 사는 마을)은 다음과 같습니다.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운서리, 용산리, 용정리, 유원리 등),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 신산리, 이룡리 등), 함안군 칠북면 (검단리 등), 거제시 (거제면, 연초면, 하청면 등), 의령군 (지정면 봉곡리, 화정면 상정리 등), 합천군 (야로면 하빈리 등)
-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 등)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장평리 등)
-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 귀산리 등), 순천시 (별량면 봉림리 등)
- 기타 지역: 초계, 장흥, 서울, 마산, 창원, 의령, 나주, 고성, 풍덕, 당진, 진천, 충주, 평택, 양산, 남원, 장단, 파주, 유산, 대전, 칠곡, 화성, 부안, 보은 등 (분파별로 거주 지역이 상이할 수 있습니다.)
특히 본관 소재지인 경남 함안 지역에는 칠원윤씨와 관련된 유적도 남아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홍포 서원(鴻浦書院)이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에 자리하고 있어, 선조들의 학문과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칠원윤씨, 당신의 이야기를 이어가세요!
지금까지 칠원윤씨의 시조와 역사, 다양한 분파, 항렬, 그리고 역사를 빛낸 수많은 인물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신라시대부터 시작된 유구한 역사 속에서 칠원윤씨는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우리 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습니다.
이 글을 통해 칠원윤씨 후손이신 분들은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자긍심을 더욱 느끼셨기를 바라며, 칠원윤씨에 대해 궁금증을 가졌던 분들에게는 유익한 정보가 되었기를 희망합니다. 우리의 뿌리를 아는 것은 현재의 나를 이해하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됩니다.
혹시 더 궁금한 점이나 알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관련 서적이나 족보를 찾아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자랑스러운 칠원윤씨의 역사는 바로 여러분의 이야기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