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정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2025년 05월 18일 by 오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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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정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나주정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안녕하세요! 오늘은 우리나라의 유서 깊은 성씨 중 하나인 나주 정씨(羅州丁氏)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나의 뿌리를 찾는 여정은 언제나 흥미롭고 가슴 벅찬 일인데요. 특히 나주 정씨는 그 역사와 전통이 깊어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 글을 통해 나주 정씨의 시조와 유래, 주요 분파, 족보와 항렬, 그리고 나주 정씨를 빛낸 인물들까지! 여러분이 궁금해하실 만한 모든 정보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드리겠습니다. 혹시 나주 정씨이시거나, 주변에 나주 정씨 지인이 있다면 더욱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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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정씨의 시작: 시조와 역사 이야기

모든 성씨에는 그 시작을 알리는 시조가 있기 마련입니다. 나주 정씨의 뿌리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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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정씨(丁氏)의 시작, 도시조 정덕성(丁德盛)

나주 정씨를 포함한 한국 정씨(丁氏)의 역사는 멀리 중국 당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도시조(都始祖)로 알려진 정덕성(丁德盛) 선생은 당나라 문종 때 대승상(大丞相)이라는 높은 벼슬을 지냈고, 무종 때는 대양군(大陽君)에 봉해졌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853년(신라 문성왕 15년), 그는 군국사(軍國事)에 관해 직언을 하다가 다른 재상들의 시기를 받아 안타깝게도 머나먼 타국 땅인 신라, 지금의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도(押海島)로 유배를 오게 됩니다. 이곳에 정착하면서 한국 정씨의 시초가 되었다고 전해지며, 이로 인해 압해 정씨의 시조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마치 한 편의 역사 드라마 같지 않나요?

2. 나주 정씨의 1세조, 정윤종(丁允宗)

정덕성 선생 이후 안타깝게도 계보가 잠시 실전(失傳)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려 중엽에 활약했던 정윤종(丁允宗) 선생을 나주 정씨의 1세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다시 이어오고 있습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때로는 기록이 소실되기도 하지만, 이렇게 다시 뿌리를 찾아 이어가는 모습에서 우리 조상들의 굳건한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3. 나주(羅州)에 뿌리내리다, 입향조 정신걸(丁臣傑)

그렇다면 나주 정씨는 어떻게 '나주'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을까요? 그 주인공은 바로 1세조 정윤종 선생의 5세손인 정자급(丁子伋)의 증손자, 정신걸(丁臣傑) 선생입니다.

고려시대에 군기감 판관(軍器監判官)을 거쳐 전라도 관찰사(觀察使)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았던 정신걸 선생은 이후 전라남도 나주(羅州)에 터를 잡고 살아가셨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의 후손들이 나주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오늘날의 나주 정씨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아름다운 고장 나주가 나주 정씨의 역사적인 중심지가 된 순간이죠!

본관: 전라남도 나주시 (羅州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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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정씨의 가지들: 주요 분파 이야기

하나의 큰 나무가 여러 가지를 뻗듯, 나주 정씨 역시 여러 분파(分派)로 나뉘어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각 분파는 파조(派祖)를 중심으로 형성되며, 저마다의 특색을 가지고 발전해왔습니다. 주요 분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월헌공파 (月軒公派): 파조 정시윤 (丁時潤)
  • 참판공파 (參判公派): 파조 정수규 (丁壽龜) - 금성군 정수강의 동생입니다.
  • 군수공파 (郡守公派): 파조 정옥 (丁沃)
  • 사직공파 (司直公派): 파조 정호 (丁浩)
  • 생원공파 (生員公派): 파조 정택 (丁澤)
  • 감찰공파 (監察公派): 파조 정흡 (丁洽)
  • 현감공파 (縣監公派): 파조 정연 (丁淵)
  • 문재공파 (文齋公派): 파조 정익 (丁翊)
  • 금성군파 (錦城君派): 파조 정수강 (丁壽崗)

이 외에도 여러 분파가 있을 수 있으며, 각 분파는 고유의 역사를 간직하며 나주 정씨 가문의 번영에 기여해왔습니다.

뿌리를 기록하다: 나주 정씨 족보와 항렬

우리나라만큼 족보(族譜)를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도 드물죠. 족보는 한 가문의 역사를 담은 소중한 기록이자, 후손들이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자긍심을 갖게 하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나주 정씨는 대동보(大同譜)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족보를 관리하고 있으며, 각 분파별로도 족보를 편찬하여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족보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나 열람을 원하신다면 나주정씨중앙종친회와 같은 공식적인 기관을 통해 문의하시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나주 정씨의 돌림자, 항렬(行列)은 어떻게 될까?

족보와 함께 중요한 것이 바로 항렬자(行列字), 흔히 말하는 돌림자입니다. 항렬자는 이름에 특정 글자를 사용하여 같은 혈족 내에서 세대(世)의 순서를 나타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를 통해 처음 만나는 친척이라도 항렬자를 보면 서로의 세대 관계를 쉽게 파악할 수 있죠. 정말 지혜로운 전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주정씨중앙종친회에서 제공하는 나주 정씨의 항렬자는 중시조 1세 정윤종(丁允宗) 선생을 기준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이름의 앞 또는 뒤에 항렬자가 위치하며, '○' 표시는 이름의 외자를 의미합니다. 또한, 비고란의 오행(五行)은 항렬자를 정할 때 고려되는 전통적인 원리 중 하나입니다.

 

세(世) 항렬자(行列字) 비고(備考) - 오행(五行)
23세 ○용(容)  
24세 재(載)○ 토(土)
25세 ○현(鉉), ○종(鍾) 금(金)
26세 영(永)○, 원(源)○ 수(水)
27세 ○식(植), ○상(相) 목(木)
28세 병(炳)○, 환(煥)○ 화(火)
29세 ○규(圭), ○기(基) 토(土)
30세 석(錫)○, 진(鎭)○ 금(金)
31세 ○태(泰), ○수(洙) 수(水)
32세 주(柱)○, 동(東)○ 목(木)
33세 ○섭(燮), ○희(熙) 화(火)
34세 균(均)○, 배(培)○ 토(土)
35세 ○호(鎬), ○선(善) 금(金)
36세 해(海)○, 윤(潤)○ 수(水)
37세 ○근(根), ○표(杓) 목(木)
38세 연(然)○, 열(烈)○ 화(火)
39세 ○준(埈), ○철(喆) 토(土)
40세 경(庚)○, 신(申)○ 금(金)
41세 ○홍(泓), ○락(洛) 수(水)
42세 인(寅)○, 모(模)○ 목(木)
43세 ○묵(默), ○형(炯) 화(火)
44세 성(城)○, 곤(坤)○ 토(土)
45세 ○용(鏞), ○상(商) 금(金)
46세 순(淳)○, 택(澤)○ 수(水)
47세 ○림(林), ○권(權) 목(木)
48세 훈(薰)○, 현(炫)○ 화(火)
49세 ○요(堯), ○혁(赫) 토(土)
50세 강(鋼)○, 련(鍊)○ 금(金)

주의사항: 항렬자는 각 파(派)나 지역, 또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장 정확한 정보는 해당 문중의 어른들이나 종친회를 통해 확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나주 정씨를 빛낸 자랑스러운 인물들

나주 정씨는 역사적으로 훌륭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며 국가와 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해왔습니다. 어떤 분들이 나주 정씨 가문을 빛냈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조선시대의 주요 인물

  • 정수강 (丁壽崗): 조선 세조 때의 공신입니다. 계유정난에서 큰 공을 세워 정난공신 2등에 책록되었고, 금성군(錦城君)에 봉해졌습니다. 그의 용맹함과 충성심은 후대에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 정호선 (丁好善, 1495년 ~ 1580년): 조선 중종 때 활약한 문신으로, 왕명을 출납하던 중요한 자리인 승지를 지냈습니다.
  • 정언각 (丁彦殼, 1498년 ~ 1556년): 조선 명종 때의 문신으로, 건설과 공업을 담당하는 공조참판을 역임했습니다.
  • 정응두 (丁應斗, 1508년 ~ 1572년): 조선 명종 때 우의정 다음가는 자리인 우참찬을 지낸 뛰어난 문신입니다.
  • 정윤희 (丁胤禧, 1531년 ~ ?): 조선 선조 때 형조판서라는 중책을 맡아 법질서 확립에 기여했습니다.
  • 정옥형 (丁玉亨, 1555년 ~ 1636년): 조선 선조 때 호조참판을 지내며 나라의 재정을 담당했습니다.
  • 정윤우 (丁胤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큰 공을 세워 첨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습니다. 나라를 지킨 그의 용기는 길이 기억될 것입니다.
  • 정뇌경 (丁뇌卿, 1608년 ~ 1639년): 조선 인조 때의 문신으로 짧지만 굵은 삶을 살았습니다.
  • 정지윤 (丁志胤, 1669년 ~ 1730년): 조선 숙종 때 대사간을 지내며 왕에게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강직한 신하였습니다.
  • 정동유 (丁東有, 1744년 ~ 1808년): 조선 정조 때의 학자로, 왕립 학문 연구 기관인 규장각의 직제학을 지냈습니다.
  • 정학수 (丁學秀): 조선 말기의 학자로, 학문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근현대의 주요 인물

나주 정씨의 빛나는 역사는 근현대에도 이어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인물들을 배출했습니다.

  • 정수칠 (丁洙七, 1883년 ~ ?):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입니다.
  • 정일권 (丁一權, 1917년 ~ 1994년): 대한민국 제8대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국회의장으로도 활동하며 한국 정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 정래혁 (丁來赫, 1926년 ~ 2022년): 대한민국 제22대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고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 정승화 (丁昇華, 1929년 ~ 2002년): 대한민국 제22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냈습니다.
  • 정호용 (丁浩容, 1932년 ~ ): 대한민국 제25대 국방부 장관과 국회의원을 역임했습니다.
  • 정시채 (丁時采, 1936년 ~ ): 대한민국 제3대 농림부 장관을 지냈고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 정상천 (丁相賢, 1931년 ~ 2015년): 대한민국 제3대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 정우택 (丁宇澤, 1953년 ~ ): 국회부의장을 지냈으며 현재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전 충청북도지사를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 정세현 (丁世鉉, 1945년 ~ ): 대한민국 제29대와 제30대 통일부 장관을 지내며 남북 관계 발전에 힘썼습니다.
  • 정범구 (丁帆求, 1954년 ~ ): 대한민국 제16대, 18대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 정동영 (丁東泳, 1953년 ~ ): 대한민국 제31대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국회의원으로도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 정운천 (丁雲天, 1954년 ~ ): 대한민국 제58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지냈고,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 정경두 (丁景斗, 1960년 ~ ): 대한민국 제46대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주의: 위에 언급된 인물 정보는 주요 출처에서 나주 정씨로 언급된 분들이지만, 동명이인이거나 다른 본관의 인물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더욱 정확한 정보는 관련 문헌이나 종친회를 통해 확인하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주 정씨가 함께 모여 사는 곳: 집성촌과 현황

나주 정씨는 주로 호남 지역에 많이 거주하며 집성촌(集姓村)을 이루고 살아왔습니다. 대표적인 집성촌 지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봉황면 일원
  • 전라남도 함평군 엄다면 일원
  •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도암면 일원
  • 광주광역시 광산구 일원
  • 전라북도 김제시, 부안군 일원
  • 충청남도 서천군 일원

이러한 집성촌은 나주 정씨 후손들이 서로 돕고 의지하며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온 삶의 터전입니다.

현재 나주 정씨는 정(丁)씨 성을 가진 본관 중에서 창원 정씨(昌原 丁氏)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본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압해 정씨(押海 丁氏)와 뿌리가 같다고 여겨지며, 압해 정씨에서 분적(分籍)한 성씨로 보기도 합니다.

유구한 역사, 빛나는 미래를 향해

지금까지 나주 정씨의 시조와 유래, 분파, 족보와 항렬, 그리고 자랑스러운 인물들까지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반도 나주에 깊이 뿌리내린 나주 정씨의 역사는 그야말로 유구하고 빛나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뿌리를 알고 이해하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자긍심과 정체성을 심어줍니다. 나주 정씨 후손이라면 이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앞으로도 가문을 빛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이 글이 나주 정씨에 대한 여러분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혹시 더 자세한 정보나 궁금한 점이 있다면, 나주정씨중앙종친회나 해당 문중의 어른들께 문의하시면 더욱 풍부하고 정확한 이야기를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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