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수이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목차
안녕하세요! 오늘은 한국의 유서 깊은 성씨 중 하나인 덕수이씨(德水李氏)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혹시 "덕수 이씨"라는 성씨를 들어보셨나요? 아마 많은 분들이 고개를 끄덕이실 텐데요, 그도 그럴 것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조선시대의 대학자 율곡(栗谷) 이이(李珥) 선생과 임진왜란의 영웅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장군을 배출한 명문가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한 덕수이씨의 시조는 누구이며, 그 유래와 본관은 어디인지, 또 어떤 분파들이 있고, 후손들은 어떤 항렬자를 사용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오늘 이 글을 통해 덕수이씨의 모든 것을 쉽고 재미있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덕수이씨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특별한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1. 덕수이씨의 시작: 시조 이돈수와 본관 덕수
모든 가문에는 그 시작을 알리는 시조가 있듯이, 덕수이씨의 시조는 고려 고종(高宗) 때 신호위중랑장(神號衛中郞將)이라는 무관 벼슬을 지낸 이돈수(李敦守)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돈수는 1218년 거란이 침입했을 때 여러 차례 큰 공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용맹함과 충성심이 덕수이씨 가문의 굳건한 초석이 된 것이죠.
이돈수의 아들인 이양준(李陽俊)은 조산대부 흥위위 보승장군을 역임했고, 손자인 이소(李劭)는 통의대부 전법판서 지삼사사 겸 세자내직랑이라는 높은 관직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이소의 아들이자 시조 이돈수의 4세손인 이윤온(李允蒕) 대에 이르러 덕수이씨는 더욱 번성하게 됩니다. 이윤온은 고려 충목왕(忠穆王) 때 판도판서 상호군을 지냈으며, 사후에는 선충경절공신 벽상삼한삼중대광 첨의정승 감춘추관사에 추증되고 덕수부원군(德水府院君)에 추봉되었습니다.
'덕수부원군'이라는 칭호에서 알 수 있듯이, 후손들은 시조 이돈수를 모시고, 이윤온이 봉해진 덕수(德水)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관인 '덕수'는 오늘날의 어디일까요? 덕수는 현재의 경기도 개성시 판문구역 덕수리 일대를 가리킵니다. 이 지역은 대한민국 이북5도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개풍군 중면 덕수리에 해당합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덕수는 고구려 시대에는 덕물현(德勿縣) 또는 인물현(仁物縣)으로 불렸습니다. 이후 통일신라 경덕왕 때 덕수현(德水縣)으로 개칭되었고, 고려시대에는 해풍군(海豊郡)과 합쳐져 풍덕부(豊德府)로 승격되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개성부(開城府)를 제외한 구 개성군과 합하여 개풍군(開豊郡)이 되는 등 행정구역상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지닌 땅, 덕수가 바로 덕수이씨의 뿌리가 된 것입니다.
2. 가문의 큰 줄기: 주요 분파와 대표 인물
덕수이씨는 시조 이돈수의 4세손인 이윤온(李允蒕)의 아들 삼형제 대에서 크게 세 갈래로 나뉘며, 여기서 다시 여러 분파가 파생되었습니다. 마치 큰 강물이 여러 지류로 나뉘듯, 덕수이씨의 혈통도 다양한 가지를 뻗으며 번성해왔습니다.
- 이윤온의 장자 이윤번(李允蕃) 후손: 덕수이씨 가문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계파입니다. 이윤번의 후손들은 다시 여러 파로 나뉘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파가 바로 문성공파(文成公派)입니다.
- 문성공파(文成公派): 파조는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자 정치가인 율곡(栗谷) 이이(李珥) 선생입니다. 이이 선생은 이윤번의 손자이자 이원수(李元秀)와 신사임당(申師任堂)의 아들로, 그의 학문적 업적과 경세사상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문성(文成)은 이이 선생의 시호입니다.
- 이 외에도 이윤번의 후손으로는 노당공파(老當公派), 사의공파(思義公派), 병참공파(兵參公派) 등이 있습니다.
- 이윤온의 차자 이윤현(李允顯) 후손: 참판공파(參判公派)를 이루고 있습니다.
- 이윤온의 계자 이선용(李善用) 후손: 바로 그 유명한 충무공파(忠武公派)입니다.
- 충무공파(忠武公派): 파조는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장군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이선용의 현손(4대손)이자 이정(李貞)의 아들입니다. 그의 불멸의 업적은 덕수이씨 가문의 자랑이자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자긍심입니다. 충무(忠武)는 이순신 장군의 시호입니다.
이처럼 덕수이씨는 조선시대 학문과 국방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율곡 이이 선생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배출한 명문 중의 명문입니다.
그 외 나무위키 등의 자료에 따르면, 이윤번의 후손 중에서는 연헌(蓮軒) 이행(李荇)과 문경공(文敬公) 이기(李芑)의 아버지인 이의무(李宜茂)를 파조로 하는 연헌공파(蓮軒公派)도 언급됩니다. 이 연헌공파 안에는 문정공(文貞公) 이식(李植)을 파조로 하는 문정공파와 문혜공(文惠公) 이안눌(李安訥)을 파조로 하는 문혜공파 등이 있다고 하니, 그 분파의 다양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3. 우리는 한 뿌리: 덕수이씨 대동항렬표
항렬(行列)은 같은 혈족 안에서 세대(世代表)를 나타내는 서열을 분명히 하기 위해 이름자 중 한 글자를 공통으로 사용하는 전통입니다. 항렬자를 보면 그 사람이 시조로부터 몇 세손인지, 그리고 같은 가문 내 다른 사람과의 관계(할아버지뻘인지, 아저씨뻘인지, 형제뻘인지 등)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덕수이씨는 여러 분파가 있지만, 하나의 통합된 대동항렬표(大同行列表)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덕수이씨가 비록 여러 파로 나뉘었지만 '우리는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항렬자는 보통 오행(五行)의 상생(相生) 원리인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의 순서대로 글자 변(邊)이나 부수(部首)에 넣어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래는 덕수이씨의 대동항렬표 중 일부입니다. (시조 1세를 기준으로 한 세수입니다.)
세(世) | 항렬자 (한자) | 위치 | 세(世) | 항렬자 (한자) | 위치 |
22세 | 기(紀) | ○ | 37세 | 구(九) | ○ |
23세 | 식(植) | ○ | 38세 | 서(書) | ○ |
24세 | 섭(燮) | ○ | 39세 | 회(會) | ○ |
25세 | 규(圭) | ○ | 40세 | 수(修) | ○ |
26세 | 종(鍾) | ○ | 41세 | 행(行) | ○ |
27세 | 우(雨) | ○ | 42세 | 모(謨) | ○ |
28세 | 병(秉) | ○ | 43세 | 돈(敦) | ○ |
29세 | 희(熙) | ○ | 44세 | 건(建) | ○ |
30세 | 재(載) | ○ | 45세 | 곤(坤) | ○ |
31세 | 용(鏞) | ○ | 46세 | 배(培) | ○ |
32세 | 연(淵) | ○ | 47세 | 성(成) | ○ |
33세 | 영(榮) | ○ | 48세 | 동(東) | ○ |
34세 | 노(魯) | ○ | 49세 | 렬(烈) | ○ |
35세 | 기(基) | ○ | 50세 | 균(均) | ○ |
36세 | 선(善) | ○ | 51세 | 현(鉉) | ○ |
... | ... | ... | ... | ... | ... |
52세 | 호(浩) | ○ | 57세 | 택(澤) | ○ |
53세 | 표(杓) | ○ | 58세 | 상(相) | ○ |
54세 | 헌(憲) | ○ | 59세 | 형(炯) | ○ |
55세 | 준(埈) | ○ | 60세 | 기(埼) | ○ |
56세 | 경(庚) | ○ |
- 위 표에서 '위치'의 '○' 표시는 이름 가운데 또는 끝 글자에 항렬자를 사용함을 의미합니다. (예: 23세손은 이름에 '植'자를, 24세손은 '燮'자를 사용하는 식입니다.)
- 항렬자는 시대와 가문의 상황에 따라 변동이 있을 수 있으니, 정확한 정보는 해당 종친회에 문의하시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4. 덕수이씨, 그 역사와 정신을 기리며
지금까지 덕수이씨의 시조와 본관, 주요 분파와 인물, 그리고 항렬표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고려시대 용맹한 무장이었던 이돈수에서 시작하여, 조선시대 학문과 국방을 빛낸 율곡 이이와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배출하기까지, 덕수이씨의 역사는 그야말로 한국사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특정 가문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인물들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그들이 살아온 시대의 정신과 가치를 배우고 현재 우리의 삶에 비추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덕수이씨 가문이 배출한 위대한 인물들의 삶과 업적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과 교훈을 줍니다.
자신의 뿌리를 알고 이해하는 것은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덕수이씨 후손이라면 자신의 가문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것이고, 그렇지 않은 분들이라도 한국사의 빛나는 인물들을 배출한 명문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를 한층 넓힐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린 덕수이씨 이야기가 여러분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더 깊은 관심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혹시 주변에 덕수이씨이신 분이 있다면, 오늘 알게 된 내용을 바탕으로 더욱 풍성한 대화를 나눠보시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