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진이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목차
안녕하세요! 오늘은 우리나라의 유서 깊은 성씨 중 하나인 벽진이씨(碧珍李氏)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나의 뿌리를 찾는 여정은 언제나 설레고 의미 있는 일이죠. 혹시 주변에 벽진이씨 성을 가진 분이 계시거나, 본인이 벽진이씨라면 더욱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벽진이씨의 시조는 누구이며,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을까요? 또, 가문을 빛낸 인물들과 후손들이 지켜온 항렬자는 어떻게 되는지, 지금부터 함께 자세히 파헤쳐 보겠습니다!
1. 벽진이씨의 시작: 시조 이총언과 본관 '벽진'
모든 가문에는 그 시작을 알리는 시조가 있듯이, 벽진이씨의 시조는 신라 말부터 고려 초에 활약한 이총언(李悤言) 할아버지입니다.
- 시조 이총언(李悤言, 858년 ~ 938년): 혼란기, 백성을 지키고 새 시대를 열다이총언 할아버지는 858년(신라 헌안왕 2년)에 태어나 938년(고려 태조 21년) 향년 81세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신라의 국운이 기울고 후삼국이 혼란을 거듭하던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현재의 경상북도 성주 지역인 벽진(碧珍)의 태수(太守)였던 그는 뛰어난 리더십으로 지역을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보살폈습니다.특히,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혁혁한 공을 세운 그는 고려 개국공신으로 삼중대광(三重大匡)이라는 높은 벼슬에 올랐으며, 벽진장군(碧珍將軍)에 임명되고 벽진백(碧珍伯)에 봉해졌습니다. 이는 시조 이총언 할아버지의 공적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흥미로운 점은 그의 아들 이영(李永) 또한 아버지의 용맹함을 이어받았다는 것입니다. 이영은 18세의 젊은 나이로 군사를 이끌고 태조 왕건을 도와 정벌에 참여했으며, 태조는 이러한 이영의 공을 높이 사 대광 사도귀(思道貴)의 딸과 혼인시켜주었다고 합니다. 대를 이어 나라에 충성한 가문의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 본관 벽진(碧珍): 가문의 뿌리가 된 땅벽진이씨의 본관인 벽진(碧珍)은 현재의 경상북도 성주군 일대의 옛 지명입니다. 시조 이총언 할아버지가 벽진 출신이었고,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지역 발전에 기여했기에 후손들이 자연스럽게 벽진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푸를 벽(碧) 자와 보배 진(珍) 자가 쓰인 '벽진'이라는 지명 자체에서도 아름답고 소중한 땅의 이미지가 느껴집니다.
2. 가문의 확장: 주요 파(派)와 분파 이야기
벽진이씨는 시조 이총언 할아버지 이후 대대로 성주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다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가세가 확장되고 여러 지역으로 옮겨 살게 되면서 다양한 파로 나뉘게 됩니다.
- 초기 세거지와 명곡(椧谷) 시대시조 이총언 할아버지부터 6세손 이실(李實) 대까지는 관향인 벽진(현재 성주군 벽진면)에 주로 거주했습니다. 그러다가 7세손인 이방화(李芳華) 대에 이르러 성주군 초전면 월곡리에 위치한 명곡(椧谷, 홈실)으로 이거하면서 새로운 세거지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 명곡은 이후 벽진이씨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공간이 됩니다.
- 산화 5파(山花五派)의 형성: 새로운 시작을 알리다벽진이씨 분파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점 중 하나는 산화 5파(山花五派)의 형성입니다. 이는 11세손인 산화선생(山花先生) 이견간(李堅幹) 할아버지의 현손(玄孫, 손자의 손자, 즉 4대손) 5형제 대에 일어난 일입니다. 당시 명곡 지역에 큰 수해가 발생하여 삶의 터전이 폐허가 되자, 이들 5형제는 각기 다른 지역으로 흩어져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개척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벽진이씨 주요 분파의 기초가 된 산화 5파입니다.
- 첫째 아들과 셋째 아들: 현재의 경상북도 칠곡(漆谷) 지역으로 이거.
- 둘째 아들: 현재의 경상북도 선산(善山) 지역으로 이거.
- 넷째 아들: 현재의 경상남도 창녕(昌寧) 지역으로 이거.
- 다섯째 아들: 현재의 경상남도 밀양(密陽) 지역으로 이거.
- 가문을 빛낸 주요 파조(派祖)벽진이씨의 역사에는 가문의 기틀을 다지고 명성을 드높인 여러 파조들이 계십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분들을 소개합니다.
- 문안공(文安公) 이견간(李堅幹)
- 호는 국헌(菊軒) 또는 산화선생(山花先生)으로 불립니다.
- 고려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3대에 걸쳐 활약한 뛰어난 문신이자 학자입니다. 통헌대부(通憲大夫) 민부전서(民部典書), 진현관대제학(進賢館大提學), 지밀직사사상호군(知密直司事上護軍) 등 중요한 관직을 역임했습니다.
- 특히 그의 문장은 매우 뛰어나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지은 시가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져 명성을 떨쳤다고 합니다. 이때 원나라 황제가 그의 거주지를 묻자 '호음곡(홈실)'이라 답했고, 황제가 '홈'과 음이 비슷한 명(椧, 홈통 명) 자를 하사하여 이후 '명곡(椧谷)'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합니다. 앞서 언급된 산화 5파는 바로 이견간 할아버지의 후손들입니다.
- 이성간(李成幹)
- 문안공 이견간의 동생으로, 역시 고려 충렬왕, 충선왕 때 활약했습니다. 중문지후(中門祗候)를 거쳐 대장군(大將軍)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 형 이견간을 따라 학문에도 힘썼으며, 충성심이 깊고 지혜와 용기가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 이당개(李唐蓋)
- 고려시대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시중(門下侍中)이라는 최고위직에 올랐으며, 금릉백(金陵伯)에 봉해졌습니다. 그의 높은 관직은 당시 벽진이씨 가문의 위상을 보여줍니다.
- 문정공(文靖公) 이극송(李克松)
- 호는 빙옥재(氷玉齋)입니다.
- 고려 고종 23년(1236년) 명경과(明經科)라는 과거 시험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판삼사(判三司) 겸 지사관(兼知史館) 등을 역임했습니다.
- 그의 깨끗하고 맑은 품성에 감탄한 임금이 "차가운 옥(寒玉) 같은 곧은 자태요, 가을 물(秋水) 같은 맑은 정신이라" 칭찬하며 '빙옥재'라는 호를 직접 내려주었다는 이야기는 그의 인품을 잘 말해줍니다.
- 문안공(文安公) 이견간(李堅幹)
3. 세대를 잇는 지혜: 벽진이씨 항렬자와 족보
우리나라의 성씨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항렬자(行列字)와 족보(族譜)입니다. 이를 통해 가문의 역사를 기록하고 후손들이 서로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항렬자: 이름에 새겨진 세대의 약속항렬자는 같은 혈족 내에서 세대(世)를 나타내는 돌림자입니다. 이름의 가운데 글자 또는 끝 글자에 정해진 한자를 사용하여 누가 윗대이고 아랫대인지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는 지혜로운 약속이죠. 벽진이씨 역시 고유의 항렬자를 사용하여 가문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세(世) | 항렬자 (가운데 또는 끝자) | 한자 (예시) |
31세 | 일(一), 후(厚), 화(和) | ○一, ○厚, ○和 |
32세 | 원(元), 운(雲), 우(愚), 노(魯) | 元 ○, 雲○, 愚○, 魯○ |
33세 | 언(彦), 두(斗), 중(中), 기(基) | ○彦, ○斗, ○中, ○基 |
34세 | 헌(憲), 선(善), 종(鍾), 석(錫), 택(澤), 호(鎬) | 憲○, 善○, 鍾○, 錫○, 澤○, 鎬○ |
35세 | 원(源), 수(洙), 순(淳), 하(河), 오(五), 오(吾) | ○源, ○洙, ○淳, ○河, ○五, ○吾 |
36세 | 종(種), 수(秀), 근(根), 상(相), 병(柄), 상(商), 장(章) | 種○, 秀○, 根○, 相○, 柄○, 商○, 章○ |
37세 | 하(夏), 희(熙), 환(煥), 섭(燮), 택(宅), 세(世) | ○夏, ○熙, ○煥, ○燮, ○宅, ○世 |
38세 | 규(圭), 연(延), 중(重), 경(坰), 치(致), 익(益), 의(義) | 圭○, 延○, 重○, 坰○, 致○, 益○, 義○ |
39세 | 의(義), 흠(欽), 욱(旭), 수(銖), 현(鉉) | ○義, ○欽, ○旭, ○銖, ○鉉 |
40세 | 한(漢), 태(泰), 영(泳), 호(浩) | 漢○, 泰○, 泳○, 浩○ |
41세 | 수(秀), 영(榮), 표(杓), 목(穆), 식(植) | ○秀, ○榮, ○杓, ○穆, ○植 |
42세 | 휘(輝), 용(容), 충(忠), 광(光) | 輝○, 容○, 忠○, 光○ |
43세 | 주(周), 채(埰), 원(遠), 균(均) | ○周, ○埰, ○遠, ○均 |
44세 | 진(鎭), 영(寧), 용(鏞), 녹(錄) | 鎭○, 寧○, 鏞○, 錄○ |
45세 | 택(澤), 식(湜), 낙(洛), 홍(洪) | ○澤, ○湜, ○洛, ○洪 |
46세 | 병(秉), 동(東), 정(楨), 낙(樂) | 秉○, 東○, 楨○, 樂○ |
47세 | 열(烈), 엽(燁), 훈(熏), 찬(燦) | ○烈, ○燁, ○熏, ○燦 |
48세 | 치(致), 돈(墩), 배(培), 강(堈) | 致○, 墩○, 培○, 堈○ |
49세 | 용(鎔), 정(鉦), 일(鎰), 은(銀) | ○鎔, ○鉦, ○鎰, ○銀 |
50세 | 준(浚), 한(漢), 해(海), 철(澈) | 浚○, 漢○, 海○, 澈○ |
- 참고: 위에 제시된 항렬표는 일반적인 대동 항렬표의 예시이며, 각 파(派)나 집안의 전통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장 정확한 정보는 해당 가문의 족보를 직접 확인하시거나 집안 어르신들께 여쭈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 족보: 가문의 역사를 담은 책벽진이씨 족보는 여러 차례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안타깝게도 최초 간행 시기나 주요 족보의 명칭, 특징 등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추가적인 문헌 연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각 문중이나 벽진이씨 대종회 등을 통해 현존하는 족보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족보는 가문의 뿌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4. 역사를 빛낸 벽진이씨 인물들
벽진이씨 가문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해 왔습니다. 시조와 주요 파조 외에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인물들이 많습니다.
- 고려시대의 별들
- 이숭인(李崇仁): 고려 말의 뛰어난 문신이자 학자입니다. 정몽주, 길재 등과 교유하며 높은 학문적 경지를 이루었습니다. 고려 삼은(三隱)에 버금가는 중요한 학자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 이희경(李希慶): 나라를 지키는 무관의 최고 직위 중 하나인 도원수(都元帥)를 역임했습니다.
- 이존인(李存仁): 학문과 행정을 겸비한 관료로 전서(典書) 벼슬을 지냈습니다.
- 조선시대의 거목들
- 이맹전(李孟專): 정간공(靖簡公)이라는 시호를 받은 인물로, 그의 행적은 조선 초기 벽진이씨의 위상을 보여줍니다.
- 이약동(李約東, 1416~1493): 평정공(平靖公).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청백리(淸白吏)로 이름이 높습니다. 제주목사 등을 역임하며 백성을 위한 선정을 베풀었고, 그의 청렴하고 강직한 삶은 후대에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일부 기록에서는 퇴계 이황의 스승으로도 언급되나, 연대상 직접적인 사제 관계보다는 학문적으로 영향을 준 선배 학자로 보는 것이 타당할 수 있습니다.
- 이장곤(李長坤): 정도공(貞度公). 조선 중종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한 명재상입니다.
- 이경윤(李慶胤)과 이징(李澄) 부자: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화가들입니다. 아버지 이경윤(학림정)의 뛰어난 화풍을 아들 이징이 계승하고 발전시켜 부자가 모두 화명(畫名)을 떨쳤습니다. 그들의 그림은 조선 회화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 이상길(李尙吉): 충숙공(忠肅公). 인조 때 문신으로,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워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습니다.
- 이우춘(李遇春), 이승약(李承約):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을 맞아 분연히 일어선 의병장들입니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목숨을 걸고 싸운 그들의 용기는 벽진이씨 가문의 자랑입니다.
- 이만부(李萬敷): 조선 후기의 저명한 학자로, 많은 저술을 남기며 학문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 이 외에도 이승원(李承元, 판서), 이식(李軾, 성산군), 이철균(李鐵均, 대사성), 이승언(李承彦, 좌찬성), 이언영(李彦英, 승지), 이상급(李尙伋, 충강공) 등 수많은 인물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빛나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벽진이씨대종회 "가문을 빛낸 인물" 목록에는 더 많은 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현대 사회에 기여한 인물
- 박두을(朴杜乙) 여사: 삼성그룹 창업주이신 호암 이병철(李秉喆) 회장의 부인으로, 벽진이씨 가문의 후손입니다. 한국 경제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한 삼성가의 안주인으로서 내조의 역할을 다했습니다.
5. 벽진이씨의 보금자리: 주요 집성촌
오랜 역사만큼이나 벽진이씨 후손들은 전국 각지에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지만, 특히 예로부터 대대로 살아온 주요 집성촌들이 있습니다.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월곡리 홈실(명곡)마을: 7세손 이방화 할아버지가 처음 터를 닦은 유서 깊은 곳입니다.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월오리
-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웃갓
- 경상북도 영천군 일원
- 경상북도 청송군 일원
- 그 외 전국 각지에 벽진이씨 후손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전통을 이어가는 벽진이씨
지금까지 벽진이씨의 시조 이총언 할아버지부터 주요 파와 분파 과정, 가문을 빛낸 인물들, 그리고 세대를 이어온 항렬자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신라 말 혼란기부터 고려 개국,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벽진이씨는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우리 역사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자신의 뿌리를 아는 것은 현재의 나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든든한 밑거름이 됩니다. 이 글을 통해 벽진이씨 후손들께서는 자긍심을 느끼고, 다른 분들께서는 우리 성씨 문화의 다양성과 깊이를 느껴보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더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는 각 문중이나 벽진이씨 대종회에 문의하시면 많은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벽진이씨 가문의 빛나는 역사와 전통이 후손들에 의해 자랑스럽게 이어져 나가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