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성김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목차
여러분은 혹시 자신의 뿌리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수많은 성씨 중에서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개성김씨(開城金氏). 오늘은 바로 이 개성김씨의 시조부터 본관의 유래, 다양한 분파와 족보 이야기, 그리고 후손들이 꼭 알아야 할 돌림자(항렬)와 역사 속 빛나는 인물들까지! 흥미진진한 시간 여행을 함께 떠나보려 합니다. 마치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펼쳐지는 개성김씨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세요. 이 글을 통해 여러분의 자긍심을 한층 더 높이고,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1. 개성김씨의 시작: 시조 김용주(金龍珠)와 본관 개성(開城) 이야기
모든 강물이 하나의 발원지에서 시작되듯, 개성김씨의 역사 또한 위대한 시조로부터 출발합니다.
시조, 충의공 김용주(金龍珠)
개성김씨의 시조는 김용주(金龍珠) 공으로, 시호는 충의공(忠毅公)이십니다. 놀랍게도 김용주 공은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다섯째 아들, 의성군(義城君) 김석(金錫)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뿌리가 신라 왕실과 맞닿아 있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김용주 공은 고려 문종 8년인 1054년에 문과에 급제하며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셨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여진 정벌에 큰 공을 세워 추충공신(推忠功臣)에 책록되셨으며, 개성부사(開城府使)와 평장사(平章事) 등 중요한 관직을 두루 역임하셨습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개성군(開城君)에 봉해지셨는데, 이것이 바로 개성김씨 본관의 직접적인 계기가 됩니다.
본관, 천년고도 개성(開城)
개성김씨의 본관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개성(開城)입니다.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황해북도 개성특급시에 해당합니다. 시조 김용주 공께서 개성군에 봉해지심에 따라, 그 후손들은 기존 본관이던 의성(義城)에서 분적하여 김용주 공을 시조로 모시고 개성을 새로운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 가문의 계통)를 이어오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개성김씨는 넓게 보면 신라김씨(경주김씨)를 원조로 하여 의성김씨에서 분관된 성씨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개성의 역사적 발자취:
개성은 단순한 지명을 넘어 우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곳입니다.
- 고려의 수도: 919년(고려 태조 2년) 태조 왕건이 철원에서 이곳 송악산 남쪽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고려 왕조 500년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개주(開州)라 불렸습니다.
- 다양한 이름: 역사 속에서 개성은 송악군(松嶽郡), 송도(松都), 개경(開京), 부소갑(扶蘇岬), 동비홀(冬比忽), 촉막군(蜀莫郡)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고구려 시대에는 부소갑, 신라 시대에는 송악군으로 불렸죠.
- 개경에서 개성부로: 960년(고려 광종 11년)에는 개경(開京)으로, 995년(고려 성종 14년)에는 개성부(開城府)로 개칭되었습니다.
- 조선시대 이후: 조선 건국 후 한양으로 수도가 옮겨졌지만, 개성은 여전히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1467년(세조 13년) 경기도에 편입되어 개성부윤이 파견되었고, 1906년에는 개성군이 되었습니다.
- 현대: 1949년 시제 실시에 따라 개성시가 되었고, 1955년에는 개성직할시로 승격, 2004년에는 황해북도 개성특급시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지닌 개성을 본관으로 한다는 것은 개성김씨 후손들에게 큰 자부심이 될 것입니다.
2. 널리 퍼져나간 가지: 개성김씨의 주요 분파(分派)와 족보(族譜)
한 뿌리에서 시작된 나무가 여러 가지로 뻗어 나가듯, 개성김씨 역시 오랜 세월을 거치며 여러 파(派)로 나뉘어 그 세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개성김씨의 주요 분파
개성김씨는 의성김씨에서 분적한 이후, 후손들이 전국 각지에 터를 잡고 번성하면서 다양한 분파를 형성했습니다. 주요 대파(大派)와 그 아래 세부 소파(小派)는 다음과 같이 알려져 있습니다. (자료에 따라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정확한 정보는 각 문중이나 대종회를 통해 확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 중경숭남파(中京崧南派): 봉산파(鳳山派) 등 6개파
- 삼남파(三南派): 의주파(義州派) 등 11개파
- 북청파(北靑派): 북청견처동파(北靑見處洞派) 등 5개파
- 호남파(湖南派): 임피파(臨陂派) 등 6개파
- 평남강서파(平南江西派): 강서파(江西派) 등 6개파
- 강계수하파(江界水下派): 영동작파(永同昨派) 등 6개파
이렇게 많은 파로 나뉘었다는 것은 그만큼 개성김씨 가문이 번성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각 파는 저마다의 지역적 특색과 전통을 지니며 가문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가문의 역사책, 족보(族譜)
족보(族譜)는 한 가문의 역사를 기록한 소중한 자료입니다. 개성김씨의 족보는 시조 김용주 공으로부터 시작하여 각 파별로 편찬되어 관리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족보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정보들이 담겨 있습니다.
- 세계도(世系圖): 시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혈연관계를 도표로 나타낸 것.
- 분파 과정: 어떤 계기로, 어느 세대에서 파가 나뉘었는지 기록.
- 조상들의 행적: 조상들의 이름, 자, 호, 생몰년, 관직, 학문, 공적, 일화 등.
- 배우자와 자손 관계: 누구와 혼인했고, 어떤 자손을 두었는지에 대한 기록.
족보는 단순히 이름과 관계만 나열한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가문의 정신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와 같습니다. 자신의 뿌리를 알고자 한다면 족보를 살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구체적인 족보명이나 소장 현황, 열람 방법 등은 개성김씨 대종회나 관련 문중에 문의하시면 안내받으실 수 있습니다.
3. 세대를 잇는 약속: 개성김씨의 돌림자(항렬표)와 한자
우리나라 성씨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돌림자(항렬자, 行列字)입니다. 항렬자는 이름의 특정 위치에 같은 글자를 사용하여 같은 세대에 속하는 혈족임을 나타내는 지혜로운 약속입니다.
개성김씨 돌림자 (항렬표 예시)
아래는 개성김씨 대동 항렬표의 예시입니다. 이름의 가운데 글자(○표시) 또는 끝 글자(○표시)에 항렬자를 사용합니다. 다만, 이 항렬표는 대동 항렬표의 예시이며, 실제로는 각 파나 집안의 전통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반드시 소속된 문중의 항렬표를 확인하셔야 합니다. 이는 참고용으로만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世) | 항렬자 (예시) | 비고 (오행상생법 등) |
22세 | ○환(煥) | 火 (불 화) |
23세 | ○기(基) | 土 (흙 토) |
24세 | ○호(鎬) | 金 (쇠 금) |
25세 | 태(泰)○ | 水 (물 수) |
26세 | ○주(柱) | 木 (나무 목) |
27세 | 충(忠)○ | 火 (불 화) - 예시 변경 |
28세 | ○규(圭) | 土 (흙 토) |
29세 | ... | |
30세 | ... | |
31세 | 종(鐘)○ | 金 (쇠 금) |
32세 | ○순(淳) | 水 (물 수) |
33세 | 동(東)○ | 木 (나무 목) |
34세 | ○헌(憲) | 火 (불 화) - 예시 변경 |
35세 | 주(周)○ | 土 (흙 토) - 예시 변경 |
36세 | ○진(鎭) | 金 (쇠 금) |
37세 | 영(永)○ | 水 (물 수) |
38세 | ○표(杓) | 木 (나무 목) |
39세 | 병(炳)○ | 火 (불 화) |
40세 | ○균(均) | 土 (흙 토) |
41세 | ○석(錫) | 金 (쇠 금) |
- 참고: 항렬자는 오행상생법(木火土金水)에 따라 순환하며 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 표의 '비고'는 일반적인 오행의 흐름을 참고하여 임의로 추가한 예시이며, 실제 개성김씨 항렬 제정 원칙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정확한 것은 문중 족보를 확인해야 합니다.
항렬자를 사용하는 것은 가문의 질서를 유지하고, 멀리 떨어져 사는 친척이라도 항렬을 통해 서로의 관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개성김씨 한자(漢字)
개성김씨는 한자로 다음과 같이 표기합니다.
- 開城 金氏 (열 개, 재 성, 쇠 금, 씨 씨)
자신의 성씨 한자를 정확히 아는 것도 뿌리 교육의 기본이겠죠?
4. 역사 속에서 빛난 개성김씨 인물들
개성김씨 가문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학문, 관직, 예술, 국난 극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훌륭한 인물들을 배출하며 가문을 빛냈습니다. 모든 분들을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주요 인물 몇 분을 통해 개성김씨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고려시대
- 김준(金晙): 시조 김용주 공의 손자로 알려져 있으며, 시호는 정신공(貞愼公)입니다. 고려 문종 때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예종 때는 여진 정벌에 공을 세워 병부, 예부, 이부의 상서(尙書, 오늘날의 장관급)를 지내고 평장사(平章事, 오늘날의 부총리급)에 오르셨습니다. 학문과 무공을 겸비한 뛰어난 인재였습니다.
- 김지선(金之宣): 김준의 맏아들로, 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이라는 높은 학문적 관직을 지냈습니다. (일부 기록에는 설성 김씨로 분적하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 김지경(金之慶): 김준의 차남으로, 형과 마찬가지로 상서(尙書)를 역임하며 가문의 명예를 높였습니다.
- 김원(金源): 김지선의 맏아들로, 시호는 문원공(文元公)입니다. 무예에도 뛰어나 상장군(上將軍)을 역임하며 나라를 지키는 데 공헌했습니다.
조선시대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개성김씨 인물들은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합니다.
- 김남보(金南寶): 김원의 손자로, 시호는 문민공(文敏公)입니다.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 사후 영의정에 증직될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 김무(金茂): 김현덕(金玄德)의 아들로, 좌찬성(左贊成, 정승 다음가는 높은 벼슬)을 지내며 국정 운영에 참여했습니다.
- 김절(金節) (?~1592): 조선 중기의 충신이자 의병장으로, 호는 삼족당(三足堂)입니다. 일찍이 의병장으로 유명한 조헌(趙憲) 선생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습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스승 조헌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청주 전투 등에서 큰 공을 세웠으나, 안타깝게도 금산 전투에서 장렬히 순절하셨습니다. 사후 충장공(忠壯公)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나라에서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려(旌閭, 충신, 효자 등을 표창하기 위해 마을 입구나 집에 세우던 붉은 문)를 내렸습니다.
- 김여량(金汝亮) (1603~1682): 조선 중기의 뛰어난 문신으로, 호는 만오(晩悟)입니다. 대학자 김집(金集)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고, 1633년(인조 11년) 문과에 급제한 후 봉상시 주부, 음성현감, 김제군수, 창원부사, 승지, 대사간 등 여러 중요한 관직을 역임했습니다. 특히 청백리로 이름이 높아 다섯 고을에 "청백송덕동비(淸白頌德銅碑)"가 세워졌을 정도였다니, 그의 청렴결백함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 김황(金滉), 김유(金濡), 김지(金漬): 이분들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하며 나라를 구하는 데 몸을 아끼지 않았던 용감한 인물들입니다.
- 화가 가문 - 김응환, 김득신, 김석신: 개성김씨 가문에는 뛰어난 예술가들도 많았습니다.
- 김응환(金應煥) (1742~1789):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호는 복헌(復軒)입니다. 상의원 별제(尙衣院別提)를 지냈으며, 특히 1788년(정조 12년) 왕명으로 금강산을 유람하며 그린 실경산수화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단원 김홍도에게도 영향을 준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 김득신(金得臣) (1754~1822): 바로 김응환 화가의 아들입니다! 본관이 개성이며,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아 산수화, 인물화, 풍속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뛰어난 그림 실력을 선보였습니다. 그의 풍속화는 당시 서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담아내어 오늘날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김석신(金碩臣) (1758~?): 김응환의 조카이자 김득신의 사촌으로, 이 역시 화가입니다. 산수화와 인물화를 잘 그렸다고 전해지며, 이들 화가 가문은 조선 후기 화단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개성김씨 선조들께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역사를 만들어 오셨습니다. 이분들의 삶과 업적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귀감이 됩니다.
나의 뿌리, 개성김씨의 자긍심을 간직하며
지금까지 개성김씨의 시조와 본관, 분파와 족보, 항렬자와 한자, 그리고 역사 속 빛나는 인물들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이어져 온 개성김씨의 역사는 참으로 깊고 넓습니다.
자신의 뿌리를 아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জানার 것을 넘어, 현재의 나를 이해하고 미래를 살아갈 힘을 얻는 과정입니다. 개성김씨 후손이라면 오늘 소개해 드린 내용을 바탕으로 가문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더욱 깊은 관심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기회가 된다면 대종회나 관련 문중을 통해 더 자세한 정보를 찾아보고, 족보를 직접 확인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
유구한 역사와 훌륭한 조상들의 빛나는 업적을 자랑하는 개성김씨. 그 일원이라는 자긍심을 가슴에 품고, 앞으로도 개성김씨 가문의 명예를 더욱 빛내는 자랑스러운 후손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