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허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목차
안녕하세요! 여러분은 혹시 자신의 뿌리, 즉 성씨의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때로는 익숙함에 가려져 그 소중함을 잊고 살아가지만, 우리의 성씨에는 수천 년의 이야기와 조상들의 삶이 담겨 있답니다. 오늘은 바로 그 이야기 중 하나, 김해 허씨(金海 許氏)에 대한 흥미롭고 깊이 있는 여정을 떠나보려 합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죠. 특히 김해 허씨는 가락국의 신비로운 역사와 맞닿아 있어 더욱 특별한데요. 시조 허염(許琰)으로부터 시작된 김해 허씨의 유구한 역사, 다양한 분파, 세대를 이어온 항렬(돌림자), 그리고 역사의 페이지를 장식한 빛나는 인물들까지! 지금부터 저와 함께 김해 허씨의 모든 것을 샅샅이 파헤쳐 볼까요? 이 포스팅을 통해 여러분의 성씨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가족들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소중한 정보들을 얻어 가시길 바랍니다.
1. 김해 허씨, 그 시작을 찾아서: 시조 허염과 신비로운 유래
모든 이야기에는 시작이 있듯, 김해 허씨의 역사 또한 시조로부터 출발합니다. 김해 허씨의 시조는 허염(許琰)으로, 그는 놀랍게도 가락국(駕洛國)의 시조인 수로왕(首露王)의 왕비, 바로 허황후(許皇后, 허황옥)의 35세손으로 전해집니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따르면 허염은 고려 문종(文宗) 때 삼중대광(三重大匡)이라는 높은 벼슬을 지내고 가락군(駕洛君)에 봉해졌다고 해요. 이후 그의 후손들은 허염을 시조로 모시고, 가락국의 옛 터전인 김해(金海)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허황후의 아들 중 일부가 어머니의 성을 따라 허씨(許氏)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로 인해 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김해 김씨(金海 金氏)와 김해 허씨는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형제와 같은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두 성씨는 동족으로 여겨 서로 혼인하지 않는 풍습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답니다. 마치 한 집안사람처럼 서로를 대하는 것이죠.
우리의 뿌리가 시작된 곳, 본관 김해(金海)의 역사
김해 허씨의 본관인 김해는 현재 경상남도 김해시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입니다. 낙동강 하류의 기름진 땅에 자리 잡아 일찍부터 가락국의 문화 중심지로 번성했죠. 신라에 병합된 이후에도 금관군, 금관소경, 김해소경 등으로 불리며 중요한 지역으로 여겨졌습니다. 고려시대에는 김해부, 임해현, 김해안동도호부 등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조선시대에는 김해도호부로 승격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김해는 오랜 역사 속에서 수많은 변화를 겪으며 오늘날의 김해시에 이르렀습니다. 김해 허씨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본관 김해의 역사적 발자취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 532년 (신라 법흥왕 19년): 신라에 병합되어 금관군(金官郡)이 됨.
- 680년 (문무왕 20년): 금관소경(金官小京)이 됨.
- 757년 (경덕왕 16년): 김해소경(金海小京)으로 개칭.
- 940년 (고려 태조 23년): 김해부(金海府)로 개칭.
- 1413년 (태종 13년):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로 승격.
- 1995년: 김해군과 통합하여 현재의 김해시가 됨. (중간 과정 생략)
2. 하나의 큰 강에서 여러 갈래로: 김해 허씨의 계파(系派) 이야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김해 허씨는 하나의 큰 줄기에서 여러 갈래로 나뉘어 더욱 번성하게 됩니다. 이를 분파(分派)라고 하는데요, 마치 큰 강물이 여러 지류로 나뉘어 넓은 땅을 적시는 것과 같습니다. 김해 허씨는 크게 다음과 같은 7개의 파(派)로 분파되었습니다.
- 가락군인전파(駕洛君仁全派)
- 호은공기파(湖隱公麒派)
- 중승공린파(中承公麟派)
- 전직공인부파(典直公仁副派)
- 증성군구년파(甑城君龜年派)
- 판서공언룡파(判書公彦龍派)
- 상서공상파(尙書公相派)
각 파는 특정 조상을 파조(派祖)로 모시고 그 후손들이 이어져 내려오면서 형성됩니다. 혹시 김해 허씨이신 분들이라면 자신의 집안이 이 7개 파 중 어느 파에 속하는지 알아보는 것도 뿌리를 찾는 재미있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족보를 살펴보거나 집안 어르신들께 여쭤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3. 세대를 잇는 아름다운 약속: 김해 허씨 항렬(行列表)과 돌림자
"우리 집안 항렬이 어떻게 되더라?"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죠? 항렬(行列) 또는 돌림자는 같은 혈족 안에서 세대(世代表)를 나타내는 기준이 되는 글자입니다. 이름의 한 글자를 정해진 항렬자로 사용함으로써 형제, 숙질, 조손 관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있죠.
김해 허씨 역시 대대로 내려오는 항렬표가 있습니다. 아래는 김해 허씨 대동(大同) 항렬표의 일부입니다. (시조로부터 시작되는 세수 기준)
세(世)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항렬자 | 우(遇) | 만(萬) | 구(九) | 량(亮) | 필(弼) |
남(南) | 행(行) | 녕(寧) | 성(成) | 성(盛) | |
세(世)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항렬자 | 기(紀) | 범(範) | 용(庸) | 강(康) | 신(新) |
재(宰) | 정(廷) | 병(秉) | 발(發) | 규(揆) | |
세(世)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항렬자 | 돈(敦) | 학(學) | 건(建) | 숙(肅) | 인(寅) |
연(演) | 경(卿) | 흔(欣) | 진(震) | 근(根) | |
세(世) | 41세 | 42세 | 43세 | 44세 | 45세 |
항렬자 | 용(龍) | 완(琬) | 보(寶) | 성(性) | 업(業) |
수(洙) | 동(東) | 중(重) | 유(猷) | 준(遵) | |
세(世) | 46세 | 47세 | 48세 | 49세 | 50세 |
항렬자 | 국(國) | 기(璣) | 현(鉉) | 옹(甕) | - |
[참고] 위 표 외에도 22세 정(正)O, 23세 O중(中), 24세 종(宗)O, 25세 O도(道), 26세 태(泰)O, 27세 O영(永), 28세 세(世)O, 29세 O수(水), 30세 덕(德)O, 31세 O광(光) 등의 다른 항렬자가 사용되기도 합니다. 또한, 이 항렬표는 시조 허염을 1세로 기준으로 한 것이며, 만약 특정 파의 파조를 기준으로 세수를 계산할 경우 조정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증성군 구년파의 경우 시조로부터 6세를 빼서 계산해야 합니다.
자신의 이름에 항렬자가 있는지, 있다면 몇 세손에 해당하는지 찾아보는 것은 가족의 역사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항렬을 통해 멀게만 느껴졌던 친척들과도 끈끈한 유대감을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4. 역사 속에서 빛난 김해 허씨 인물들과 그 발자취
김해 허씨는 오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가문의 명예를 드높였습니다. 학문, 정치, 예술, 그리고 나라를 위한 헌신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김해 허씨 선조들의 빛나는 업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려와 조선을 빛낸 명현들:
- 허유전(許有全): 고려 원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충렬왕 때는 좌정언, 전라도 안렴사를 역임했습니다. 충숙왕 때 가락군에 봉해지고 첨의찬성사를 거쳐 정승의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 허용(許勇): 전라 판서를 역임하며 청렴하고 강직한 관리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 허백기(許伯琦): 조선 중종 때 사관으로서 역사를 기록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으며, 경상도 도사와 동지중추부사를 지냈습니다.
- 허계도(許繼道): 지극한 효행으로 나라에서 정문(旌門)이 세워질 만큼 효의 귀감이 된 인물입니다.
- 허진수(許震秀):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학문이 깊었으며, 경북 영일 금산서원에 제향되어 그 학덕을 기리고 있습니다.
- 허미수(許眉叟) 목(穆): 조선 중기의 뛰어난 학자로, 많은 저술을 남기며 학문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의인들:
- 허겸(許謙): 구한말 을사늑약에 반대하여 오적 암살을 시도하였고, 체포된 후에도 의병 활동을 펼친 애국지사입니다. 그의 용기와 나라 사랑 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귀감이 됩니다.
- 허위(許蔿): 일제강점기,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항일 투쟁의 선봉에 섰던 독립운동가입니다. 안타깝게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순국하셨으며,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이 추서되었습니다. 그의 숭고한 희생은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역사입니다.
- 허병률(許秉律): 광복회에 가입하여 임시정부의 밀명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7년 형을 선고받은 독립운동가입니다.
- 허빈(許斌): 구월산에 은거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고, 성동사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을 양성하다 체포되어 신의주 형무소에서 옥사한 독립운동가입니다.
- 허형(許炯): 독립운동 단체인 노인단에 가입하여 강우규 의사의 의거를 지원하다 체포되었습니다. 1963년 건국공로훈장 단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김해 허씨 인물들이 역사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가문을 빛냈습니다. 이분들의 삶과 업적을 되새기며 김해 허씨로서의 자긍심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김해 허씨, 어디에 많이 살았을까? (주요 세거지)
김해 허씨는 오랜 세월 동안 한반도 곳곳에 터를 잡고 살아왔습니다. 주요 세거지로는 다음과 같은 지역들이 알려져 있습니다.
- 강원도 홍천군 일대
- 경상남도 진양군, 의령군, 합천군 일원
- 경상북도 달성군, 월성군, 포항시, 영천 일원
- 충청북도 진천군 일원
- 경기도 용인군 일원
- 대구광역시 일원
- 그 외 전라남도 승주, 광양, 경상북도 선산, 금릉, 고령, 청도, 영일 등
이러한 세거지 정보는 자신의 뿌리를 찾는 데 또 다른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김해 허씨의 현재 (인구수)
가장 최근 공식 집계인 2000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김해 허씨는 당시 37,788가구, 총 121,031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물론 현재는 인구 변동이 있을 수 있지만, 여전히 많은 김해 허씨 후손들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5. 나의 뿌리, 김해 허씨의 자부심을 가슴에 품고
지금까지 김해 허씨의 시조와 유래부터 분파, 항렬, 그리고 빛나는 인물들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여정을 함께했습니다.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아득한 옛 가락국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김해 허씨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는데요, 어떠셨나요?
우리의 성씨는 단순히 우리를 부르는 호칭을 넘어, 수많은 조상들의 삶과 지혜, 그리고 역사가 응축된 소중한 유산입니다. 김해 허씨라는 이름 속에는 허황후의 신비로운 이야기, 허염 시조의 개척 정신, 그리고 수많은 선조들의 빛나는 업적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오늘 이 글을 통해 김해 허씨 여러분은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자부심을 한층 더 깊게 느끼셨기를 바랍니다. 또한, 다른 성씨를 가진 분들이라도 자신의 성씨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뿌리를 아는 것은 현재의 나를 이해하고 미래를 살아갈 힘을 얻는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김해 허씨의 이야기를 나누며 세대 간의 정을 더욱 돈독히 하고, 자녀들에게도 우리 가문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알려주는 것은 어떨까요? 이상으로 김해 허씨의 모든 것을 알아보는 시간을 마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