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유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2025년 05월 13일 by 오르야

    진주유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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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유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진주유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우리나라의 수많은 성씨 중에서도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인물들을 배출해 온 가문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경상남도 진주를 본관으로 하는 진주 유씨(晉州 柳氏)는 학문과 관직,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명문가로 손꼽힙니다. 혹시 주변에 진주 유씨 성을 가진 분이 계신가요? 아니면 나의 뿌리가 진주 유씨는 아닐까 궁금하신가요?

오늘은 진주 유씨의 시조와 역사, 주요 분파와 그 특징, 그리고 후손들이 이름을 지을 때 따르는 항렬(돌림자)까지, 진주 유씨에 대한 모든 것을 흥미롭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특히 진주 유씨는 크게 이류(移柳)와 토류(土柳)라는 두 계통으로 나뉜다는 점이 중요한데요, 각 계통의 이야기와 함께 우리에게도 익숙한 현대 인물들까지 만나볼 예정이니 끝까지 주목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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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유씨, 그들은 누구인가?

먼저 진주 유씨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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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관: 경상남도 진주시 (과거 진주목, 진양군 등으로 불렸던 지역입니다.)
  • 계통: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 이류(移柳): 시조 류인비(柳仁庇). 문화 류씨에서 분적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 토류(土柳): 시조 류정(柳挺). 진주 지역의 토착 세력으로 성장했습니다.
  • 인구 (2015년 통계청 기준):
    • 진주 유씨: 약 68,901명
    • 진주 류씨: 약 16,964명
    • 진양 유씨: 약 4,628명
    • 진양 류씨: 약 2,380명
    • 총합: 약 9만 3천여 명
    잠깐! '유'씨와 '류'씨, 왜 다를까요? 이는 한글의 두음법칙 때문입니다. 성씨 류(柳)는 단어 첫머리에 올 때 '유'로 발음되기도 하고, 본래 음가대로 '류'로 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같은 진주 유씨라도 신분증이나 서류에 '유' 또는 '류'로 다르게 표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관 역시 진주와 진양(진주의 옛 이름)을 혼용하기도 하니 통계 확인 시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진주 유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를 다수 배출한 명문 가문으로, 이류 계통에서 약 80명, 토류 계통에서 약 50명의 급제자가 나왔다고 하니 그 학문적 깊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류(移柳) 진주 유씨: 문화 류씨에서 뻗어 나온 명문가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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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류 진주 유씨는 류인비(柳仁庇)를 시조로 모시고 있습니다. 류인비는 문화 류씨의 시조인 대승공 류차달(柳車達)의 10세손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 시대에 밀직사(密直使)라는 높은 벼슬을 지내고 진산군(晉山君, 지금의 진주)에 봉해졌습니다. 이후 그의 후손들이 진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일부 자료에서는 류차달의 8세손인 류언침(柳彦琛)이 공을 세워 진주 땅을 봉작받았고, 그의 손자인 류인비가 진주로 이주하면서 이류 진주 유씨가 시작되었다고도 합니다.

주요 분파: 류인비의 손자 대에서 여러 파로 나뉘었는데, 대표적인 분파는 다음과 같습니다.

  • 익양공파(翊襄公派): 류혜방(柳惠芳)을 파조로 함
  • 안간공파(安簡公派): 류혜손(柳惠蓀)을 파조로 함
  • 이 외에도 이판공파(吏判公派), 북부령공파(北部令公派), 시윤공파(寺尹公派), 판사공파(判事公派) 등 다양한 분파가 있습니다.

역사 속 이류 진주 유씨: 이류 진주 유씨는 조선시대에 특히 빛나는 업적을 많이 남겼습니다. 대제학 2명, 청백리 4명, 상신(정승) 2명, 공신 8명을 배출했으며, 문과 급제자 80명, 무과 급제자는 무려 380여 명에 달합니다. 특히 병마절도사, 수군절도사, 삼도수군통제사 등 국방을 책임지는 무관직에서도 뛰어난 인물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류 진주 유씨의 주요 인물:

이름 파명/관계 주요 업적/직업
류순정(柳順汀)   조선 중종 때 영의정, 중종반정 공신
류근일(柳根一) 북부령공파 33세손 언론인, 前 조선일보 주필
유석성(柳錫成) 북부령공파 31세손 신학자, 前 서울신학대학교 총장
유선호(柳宣浩) 북부령공파 32세손 정치인, 제15, 17, 18대 국회의원
유병재(柳炳宰) 안간공파 32세손 방송인, 작가
류근환(柳根桓) 북부령공파 33세손 정치인, 제12, 13대 국회의원
류근창(柳根昌) 북부령공파 33세손 군인 (육군 중장), 前 국방부 차관
류근찬(柳根粲) 북부령공파 33세손 방송인 출신 정치인, 제17, 18대 국회의원
류근지(柳根知) 북부령공파 33세손 개그맨
류완무(柳完茂) 이판공파 34세손 독립운동가
유희관(柳熙寬) 안간공파 34세손 (KBO 등록명: 유희관) 前 프로야구 선수
류희강(柳熙綱) 이판공파 35세손 (호: 검여) 서예가
류희인(柳熙寅) 시윤공파 35세손 공군 소장, 前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
유순택(柳淳澤) 이판공파 38세손 반기문 前 UN 사무총장 부인

 

이류 진주 유씨 항렬표 (돌림자): 항렬은 같은 혈족 사이의 세계(世系)를 분명히 하기 위해 이름의 특정 위치에 정해진 글자를 넣어 표시하는 것입니다. 주로 이름의 중간(항렬자+O) 또는 끝(O+항렬자)에 사용됩니다.

  • 31세: O 성(成)
  • 32세: 병(炳) O
  • 33세: O 근(根)
  • 34세: 희(熙) O
  • 35세: O 교(敎)
  • 36세: 종(鍾) O
  • 37세: O 순(淳)
  • 38세: 상(相) O

토류(土柳) 진주 유씨: 진주 땅에 뿌리내린 토착 세력의 후예

토류 진주 유씨는 류정(柳挺)을 시조로 합니다. 그는 고려 중기 진주 지역의 토착 세력 출신으로, 금자광록대부 중서령 좌우위상장군(金紫光祿大夫 中書令 左右衛上將軍)이라는 매우 높은 벼슬에 오르고 진강부원군(晉康府院君)에 봉해졌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무신정권의 최고 권력자였던 최충헌(崔忠獻)의 외조부라는 점입니다.

주요 분파: 토류 진주 유씨 역시 여러 분파로 나뉘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 백참판공파(伯參判公派)
  • 계참판공파(季參判公派)
  •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
  • 이 외에도 진천군파(晉川君派), 현감공파(縣監公派), 보령공파(保寧公派), 사의공파(司議公派), 직장공파(直長公派) 등이 있습니다.

역사 속 토류 진주 유씨: 토류 진주 유씨는 시조 류정 이래 5대에 걸쳐 봉군(封君)될 정도로 고려시대에 큰 세력을 떨쳤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문과 급제자를 약 50명 배출하며 가문의 명성을 이어갔으며, 주로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습니다.

 

토류 진주 유씨의 주요 인물:

이름 파명/항렬 주요 업적/직업
유일한(柳一韓) 진천군파 27세 형(馨) 항렬 (원래 이름 유일형) 유한양행 창업주
유해진(柳海眞) 계참판공파(보령공파) 26세 해(海) 항렬 배우
유승민(柳承敏) 계참판공파 28세 승(承) 항렬 정치인, 前 국회의원
유승안(柳承安) 계참판공파(직장공파) 28세 승(承) 항렬 前 프로야구 선수, 감독
유원상(柳元相) 계참판공파 29세 상(相) 항렬 (유승안의 아들) 프로야구 선수
유민상(柳敏相) 계참판공파(직장공파) 29세 상(相) 항렬 개그맨
유현상(柳賢相) 29세 상(相) 항렬 가수, 작곡가
유치진(柳致眞) 대사성공파 26세 치(致) 항렬 극작가, 연출가
유치환(柳致環) 대사성공파 26세 치(致) 항렬 (호: 청마) 시인
류승원(柳承源) 계참판공파(직장공파) 28세 승(承) 항렬 군인(육군 준장), 정치인, 제6, 8, 9, 10대 국회의원

 

토류 진주 유씨 항렬표 (돌림자):

  • 26세: 치(致) O
  • 27세: O 형(馨)
  • 28세: 승(承) O
  • 29세: O 상(相)
  • 30세: 희(熙) O
  • 31세: O 규(圭)
  • 32세: 종(鍾) O
  • 33세: O 영(永)
  • 34세: 식(植) O
  • 35세: O 병(炳)
  • 36세: 배(培) O
  • 37세: O 호(鎬)
  • 38세: 수(洙) O

이류와 토류, 그 관계에 대한 이야기

진주 유씨의 두 계통인 이류와 토류는 시조부터 다르고, 각기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발전해 왔습니다. 현재도 각각 별도의 족보를 편찬하고 대종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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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두 계통의 관계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도 존재합니다. 일부 토류계에서는 이류계가 문화 류씨와는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토류계의 한 분파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는 이류계 시조 류인비의 아들 또는 손자 대인 류혜손, 류혜방 이후의 계보 기록이 일부 유사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합니다.

반면, 이류계에서는 시조 류인비를 문화 류씨 시조 류차달의 후손으로 명확히 기록하고 있으며, 두 계통의 선대가 다르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고 문헌만으로는 모든 것을 명확히 밝히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이러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는 진주 유씨

지금까지 진주 유씨의 두 계통, 이류와 토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이류는 문화 류씨에서 분적하여 주로 관직과 학문에서 명성을 떨쳤고, 토류는 진주 지역의 토착 세력으로 고려시대부터 굳건한 기반을 다져왔습니다. 각 계통은 고유한 역사와 자랑스러운 인물, 그리고 체계적인 항렬을 통해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오늘 이 글을 통해 진주 유씨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셨기를 바랍니다. 나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은 언제나 흥미롭고 의미 있는 일입니다. 만약 자신이 진주 유씨이거나 주변에 진주 유씨가 있다면, 오늘 알아본 내용을 바탕으로 더욱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요?

정확한 자신의 계파나 항렬을 알고 싶다면 각 계통의 대종회에 문의하거나 집안의 족보를 참고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진주 유씨 가문의 모든 분들께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정보가 되었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진주 유씨 가문의 빛나는 역사가 계속되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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