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정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2025년 05월 12일 by 오르야

    경주정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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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정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경주정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우리나라의 수많은 성씨 중에서도 깊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경주 정씨(慶州 鄭氏). 오늘은 마치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장대한 경주 정씨 가문의 이야기를 함께 펼쳐보려 합니다. 혹시 주변에 경주 정씨 성을 가진 친구나 지인이 있다면, 이 글을 통해 그들의 뿌리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뿌리를 궁금해하는 모든 분들에게도 흥미로운 여정이 될 것입니다.

경주 정씨의 시조부터 시작하여 주요 분파, 그리고 각 파를 잇는 항렬자와 빛나는 조상들의 이야기까지,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함께 떠나볼까요? 이 글을 읽고 나면, "아, 그래서 그 이름에 그런 한자가 들어갔구나!" 혹은 "우리나라 역사 속 그 인물이 경주 정씨였어?" 하는 새로운 발견의 즐거움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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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주 정씨, 그 시작은 어디부터였을까? 시조와 유래

모든 이야기에는 시작이 있듯, 경주 정씨 가문의 시작점에는 지백호(智伯虎)라는 걸출한 인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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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조: 지백호(智伯虎)
    • 때는 바야흐로 삼한시대, 진한(辰韓) 땅에는 사로(斯盧) 6촌이라는 부족 연맹체가 있었습니다. 지백호는 이 6촌 중 하나인 진지부(珍支部)의 촌장이었습니다. 마치 고대 로마 건국의 아버지 로물루스와 레무스처럼, 그는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왕으로 추대하고 신라 건국에 혁혁한 공을 세워 개국좌명공신(開國佐命功臣)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 시간이 흘러 서기 32년, 신라 유리이사금 9년에 진지부가 본피부(本彼部)로 개칭되면서, 지백호는 낙랑후(樂浪侯)에 봉해지고 정씨(鄭氏) 성을 하사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경주 정씨를 비롯한 여러 정씨 본관의 시작점이 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 그의 공적은 후대에도 기려져, 서기 516년(법흥왕 3년)에는 문화(文和)라는 시호를 받았고, 658년(무열왕 3년)에는 감문왕(甘文王)으로 추봉되었습니다. 경주 정씨뿐만 아니라 동래, 연일, 온양, 하동, 진주 등 여러 정씨 본관에서 지백호를 도시조(都始祖)로 모시고 있는 이유입니다.
  • 중시조: 정진후(鄭珍厚)
    • 시조 지백호와 고려 시대의 정진후 사이에는 안타깝게도 계대(세대 간의 이어짐)가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경주 정씨는 고려 시대 인물인 정진후(鄭珍厚)를 1세조로 삼기도 합니다.
    • 정진후는 문과에 급제하여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 병부상서(兵部尙書) 겸 군기시윤(軍器寺尹)과 평장사(平章事)라는 높은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진 인물입니다. 그의 호는 매포(梅圃), 시호는 문정(文正)으로, 학문과 덕행이 뛰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경주 정씨는 신라 건국의 주역과 고려 시대의 명신을 뿌리로 하는 유서 깊은 가문입니다.

2. 한 뿌리, 여러 가지: 경주 정씨의 주요 분파

오랜 세월 동안 번성하면서 경주 정씨는 여러 파로 나뉘어 그 맥을 이어왔습니다. 마치 큰 나무의 줄기에서 여러 가지가 뻗어 나가듯 말이죠. 주요 분파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료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이 점 참고해주세요!)

  • 문헌공파(文獻公派)
  • 양경공파(良景公派)
  • 월성위파(月城尉派) (또는 월성위공파)
  • 평장공파(平章公派)

각 파는 시조로부터 내려오는 큰 줄기는 같지만, 중간에 특정 조상을 기준으로 분파되어 저마다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한다면, 어느 파에 속하는지 아는 것이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3. 이름 속에 숨겨진 비밀, 항렬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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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항렬자(行列字) 또는 돌림자입니다. 항렬자는 같은 혈족 안에서 세대(世代表)를 나타내기 위해 이름의 특정 위치(주로 가운데 글자 또는 끝 글자)에 정해진 한자를 사용하는 전통입니다. 마치 세대별 유니폼처럼, 항렬자를 보면 그 사람이 어느 세대에 속하는지 짐작할 수 있죠.

경주 정씨 역시 각 파별로 고유한 항렬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주요 파의 항렬자 일부를 예시로 살펴보겠습니다. (전체 항렬표는 매우 방대하므로, 정확한 정보는 해당 파의 족보를 확인하시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66세67세68세69세70세71세72세73세74세75세76세77세78세79세80세81세82세

파명 66세 67세 68세 69세 70세 71세 72세 73세 74세 75세 76세 77세 78세 79세 80세 81세 82세
문헌공파 영(永) ○조(朝) 병(炳) ○균(均) 종(鍾) ○수(洙) 낙(樂) ○섭(燮) 경(坰) ○옥(鈺) 순(淳) ○권(權) 경(炅) ○기(基)      
양경공파 ○해(海) 동(東) ○훈(薰) 지(址) ○호(鎬) 택(澤) ○직(稙) 원(愿) ○채(埰) 일(鎰) ○구(求) 락(樂) ○욱(煜) 준(埈) ○선(善) 기(淇) ○수(秀)
월성위공파   ○식(植) 헌(憲) ○수(壽) 용(鎔) ○준(準) 병(秉) ○환(煥) 또는 ○훈(薰) 규(奎) ○석(錫) 문(汶)            
평장공파 ○순(淳) 또는 ○영(永) 상(相) 또는 조(朝) ○열(烈) 또는 ○병(炳) 재(載) 또는 균(均) ○흠(欽) 또는 ○용(鎔) 수(洙) 또는 홍(洪) ○식(植) 또는 ○주(柱) 연(然) 또는 훈(薰) ○봉(琫) 호(鎬) 또는 용(鏞)              

(참고: 위 표에서 '○' 표시는 이름의 위치를 의미합니다. '○글자'는 이름의 앞 글자에, '글자○'는 이름의 뒷 글자에 항렬자를 사용하는 경우를 나타낼 수 있지만, 정확한 사용법은 각 파의 규약에 따릅니다. 또한, 세수는 자료에 따라 다르게 표기될 수 있으니 유의해주세요.)

항렬자를 통해 우리는 조상들의 지혜와 가족 공동체 의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혹시 자신의 이름이나 주변 사람들의 이름에서 이 항렬자를 발견한다면, 그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도 재미있을 겁니다.

4. 역사의 페이지를 장식한 경주 정씨 인물들

경주 정씨 가문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인물을 배출하여 나라와 사회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시대를 넘나들며 빛나는 족적을 남긴 주요 인물들을 만나보겠습니다.

  • 고려 시대
    • 정진후(鄭珍厚): 앞서 언급된 중시조로, 평장사, 월성군에 봉해진 고려의 명신입니다.
    • 정휘(鄭暉): 정진후의 5대손으로, 고려 말 문하평리(門下評理)를 지내고 월성군에 봉해졌습니다.
  • 조선 시대
    • 정희계(鄭熙啓): 정휘의 아들로, 조선 개국공신에 책록되고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역임했으며 계림군(雞林君)에 봉해졌습니다. 시호는 양경(良景)으로, 양경공파의 파시조가 됩니다.
    • 정지년(鄭知年): 사예(司藝)를 지냈고 사후에 좌찬성으로 증직되었으며 계림군에 봉해졌습니다.
    • 정효상(鄭孝常): 정지년의 차남으로, 이조판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역임하고 계림군에 봉해졌습니다. 시호는 제안(齊安)입니다.
    • 혜빈 정씨(惠嬪 鄭氏): 조선 제12대 왕 인종의 후궁입니다.
    • 정발(鄭撥): 정희계의 6대손으로, 부산진첨사(釜山鎭僉使)로 재임 중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부산진성 전투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사후 좌찬성(左贊成)으로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장(忠壯)입니다. 그의 충절은 오늘날까지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 정승복(鄭承復): 정지년의 현손으로, 함흥판관을 지냈고 병조참판으로 증직되었습니다.
  • 대한민국 현대에 이르러서도 경주 정씨 가문은 정계, 관계, 학계, 재계, 문화예술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나무위키 자료 기준) 정간용(국회의원), 정규헌(국회의원), 정민태(야구선수/코치), 정승(초대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정영주(배우), 정옥임(국회의원), 정인용(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정정훈(국회의원), 정지훈(가수 비), 정태영(국회의원), 정희채(국회의원, 초대 서울시립대학교 총장) 등 각계각층에서 활약하는 인물들이 많습니다.

이처럼 과거부터 현재까지, 경주 정씨 인물들은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가문을 빛내왔습니다.

5. 조상의 발자취를 따라, 족보와 집성촌 이야기

경주 정씨의 역사를 담고 있는 소중한 기록이 바로 족보(族譜)입니다. 족보에는 시조 지백호로부터 시작하여 각 파의 후손들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그리고 각 인물의 이름, 자(字), 호(號), 생몰년, 관직, 배우자, 자녀, 묘소 위치 등 상세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경주정씨족보(慶州鄭氏族譜)』는 지백호를 시조로 하고 있으며, 그의 5세손 정동충(鄭東沖)이 정씨로 사성된 것을 기원으로 보기도 합니다. 중시조 정진후를 기준으로 세대를 따지기도 하며, 각 파별로 분파된 이후의 계보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 가문의 역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한편, 경주 정씨는 전국적으로 분포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함께 모여 살아온 집성촌 또한 여러 곳에 형성되어 있습니다. 주요 집성촌은 다음과 같습니다. (위키백과 기준)

  •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백석리, 남양주시 호평동
  •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남곡동, 청송군 부남면 대전동
  •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율도리, 통영시 산양면 신전리
  •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대곡리, 덕월동, 황전면 회룡리, 주암면 선산리), 고흥군 풍양면 고옥리, 신안군 안좌면 방월리, 장성군 진원면 상림리, 해남군 송지면 미야리, 완도군 (고금면 가교리, 약산면, 노화읍, 신지면 동고리/가인리), 목포시 상동 영산로
  •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삼계면 오지리, 장수군 번암면 장수리
  •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추정리
  • 충청북도: 영동군 추풍령면 추풍령리
  • 함경남도: 영흥군 진평면 한동리

이러한 집성촌은 단순히 같은 성씨가 모여 사는 곳을 넘어, 가문의 전통과 문화를 계승하고 공동체 의식을 다지는 중요한 공간이 되어 왔습니다.

나의 뿌리를 아는 것의 의미

지금까지 경주 정씨 가문의 시조와 유래, 주요 분파, 항렬자, 그리고 빛나는 인물들과 족보, 집성촌 이야기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천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이어져 온 경주 정씨의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을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자신의 뿌리를 알고 이해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조상들이 걸어온 길을 통해 우리는 삶의 지혜를 배우고, 가족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미래를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합니다. 혹시 경주 정씨이시거나, 주변에 경주 정씨 지인이 있다면 오늘 이야기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성씨를 가진 분들이라도 자신의 뿌리에 대한 관심과 자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위에 제시된 정보는 일반적인 내용을 종합한 것이며, 보다 상세하고 정확한 정보는 해당 종친회나 전문적인 족보 자료를 참고하시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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