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녕조씨 시조 조상 파 족보 돌림자 한자 항렬 인물 목차
혹시 주변에 '조(曺)'씨 성을 가진 분이 계신가요? 아니면 "우리 가문은 창녕 조씨야"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분을 만난 적 있으신가요? 아마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이름, 바로 창녕 조씨(昌寧 曺氏)입니다. 신라 시대부터 그 유구한 역사가 시작되어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학자와 관료, 예술가 등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하며 대한민국 역사에 굵직한 획을 그어온 명문가인데요. 오늘은 마치 한 편의 역사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한 창녕 조씨의 뿌리와 역사, 주요 인물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그 깊고 오랜 이야기 속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1. 창녕 조씨의 시작: 시조 조계룡과 신비로운 탄생 설화
모든 가문에는 그 시작을 알리는 시조(始祖)가 있듯이, 창녕 조씨의 시조는 바로 조계룡(曺繼龍)입니다. 그는 신라 제26대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전해지며, 그의 탄생에는 매우 신비롭고 흥미로운 설화가 깃들어 있습니다.
이야기는 조계룡의 어머니인 예향(禮香)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녀는 경상남도 창녕의 진산(鎭山)인 화왕산(火旺山)에 있는 용지(龍池)라는 연못에서 목욕하고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정성껏 기도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황홀경 속에서 신비로운 용의 아들, 옥결(玉玦)을 만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조계룡을 잉태하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드디어 아이가 태어났는데, 놀랍게도 아기의 양쪽 겨드랑이 밑에는 붉은색으로 '조(曺)' 자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 신기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진평왕은 이를 매우 길한 징조로 여기고 아기에게 조(曺)씨 성을 하사하며, 이름을 계룡(繼龍), 즉 '용을 이었다'는 뜻으로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창녕 조씨의 시작은 한 편의 전설과 같이 신비로운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창녕 조씨의 본관(本貫)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의 경상남도 창녕군(昌寧郡)입니다. 예로부터 비옥한 땅과 아름다운 자연으로 유명했던 창녕은 창녕 조씨 가문이 뿌리내리고 번성하는 역사적인 터전이 되었습니다.
2. 고려와 조선을 빛낸 명문가, 창녕 조씨의 역사
창녕 조씨는 신라 시대에 그 뿌리를 내린 이후, 고려 시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명문가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특히 고려 태조 왕건의 사위가 된 조겸(曺謙)을 중시조(中始祖)로 모시면서 가문의 위상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조겸은 용호위대장군(龍虎衛大將軍)이라는 높은 무관직을 역임하며 가문을 빛냈습니다.
고려 시대 창녕 조씨는 무려 8대에 걸쳐 평장사(平章事)라는 최고위급 관직을 배출하며 정계의 중심에서 활약했습니다. 평장사는 오늘날의 부총리급에 해당하는 매우 중요한 자리로, 한 가문에서 이렇게 여러 대에 걸쳐 평장사를 배출했다는 것은 그 가문의 세력과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도 창녕 조씨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조선 왕조 500년 동안 무려 113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며 학문과 관직에서 뛰어난 업적을 쌓았습니다. 이는 당대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었던 양반 가문 중에서도 매우 두드러지는 성과입니다.
가문의 역사가 깊어지고 자손들이 전국 각지로 퍼져나가면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해졌습니다. 이에 조선 중기 이후 각 파(派)에서는 후손들이 대수를 명확히 하고 서로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항렬자(行列字)를 제정하여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880년(고종 17년, 갑술년)에는 전국에 흩어져 있던 창녕 조씨 종친들이 뜻을 모아 대동보(大同譜)를 발간하게 됩니다. 이 갑술대동보 발간은 창녕 조씨의 계보를 집대성하고, 각기 달리 사용되던 항렬자를 통일하는 등 종중의 체계를 정립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최근인 2016년부터 2017년까지는 각 문중 파보에 제시된 항렬자의 차이를 통일하기 위한 표준 항렬자가 새롭게 제정되기도 했습니다.
3. 다양하게 나뉘면서도 한 뿌리! 창녕 조씨의 주요 파(派)와 항렬자(돌림자)
오랜 세월 동안 번성하면서 창녕 조씨는 여러 파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약 49개의 분파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분파가 시조 조계룡으로부터 시작된 한 집안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창녕 조씨는 분파가 다양하더라도 모두 단일 본관으로 여겨집니다.
그중에서도 주요 분파들을 가나다순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감사공파(監司公派)
- 낭장공파(郎將公派)
- 대사헌공파(大司憲公派)
- 문익공파(文翊公派)
- 문장공파(文章公派)
- 문정공파(文貞公派)
- 목사공파(牧使公派)
- 밀직사공파(密直司公派)
- 병조참의공파(兵曹參議公派)
- 양평공파(襄平公派)
- 지평공파(持平公派)
- 찬성공파(贊成公派)
- 태학사공파(太學士公派)
이 외에도 많은 분파들이 창녕 조씨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서로의 세대와 관계를 파악했을까요? 바로 항렬자(行列字), 즉 돌림자를 통해서입니다. 창녕 조씨의 항렬자는 우주 만물의 근본 원리로 여겨졌던 오행(木火土金水)의 상생(相生) 원리에 따라 정해집니다. 즉, 목(木)은 화(火)를 생하고, 화(火)는 토(土)를 생하고, 토(土)는 금(金)을 생하고, 금(金)은 수(水)를 생하고, 수(水)는 다시 목(木)을 생하는 순환의 원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항렬자는 보통 이름의 가운데 글자 또는 끝 글자에 정해진 한자를 사용하여 같은 세대임을 나타내고, 윗세대와 아랫세대를 구분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피하고, 족보를 보지 않고도 대략적인 세대 관계를 알 수 있게 하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방법입니다. 창녕 조씨 대종회에서 제정한 표준 항렬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별표(★)는 주로 항렬자가 사용되는 이름의 위치를 의미합니다.)
세(世) | 항렬자 (한자) | 비고 (오행) |
22세 | ★承 (승) | |
23세 | 秉 (병)★ | 木 (나무 목) |
24세 | ★煥 (환) | 火 (불 화) |
25세 | 圭 (규)★, 喜 (희)★, 基 (기)★ | 土 (흙 토) |
26세 | ★鉉 (현), ★鎬 (호), ★鐘 (종) | 金 (쇠 금) |
27세 | 永 (영)★, 海 (해)★, 洙 (수)★ | 水 (물 수) |
28세 | ★根 (근), ★植 (식), ★穆 (목) | 木 (나무 목) |
29세 | 容 (용)★, 炯 (형)★, 然 (연)★ | 火 (불 화) |
30세 | ★載 (재), ★坤 (곤), ★塤 (훈) | 土 (흙 토) |
31세 | 鎰 (일)★, 鍵 (건)★, 鏞 (용)★ | 金 (쇠 금) |
32세 | ★泰 (태), ★淳 (순), ★淵 (연) | 水 (물 수) |
33세 | 東 (동)★, 相 (상)★, 英 (영)★ | 木 (나무 목) |
34세 | ★燮 (섭), ★烈 (열), ★杰 (걸) | 火 (불 화) |
35세 | 均 (균)★, 重 (중)★, 垣 (원)★ | 土 (흙 토) |
36세 | ★鎔 (용), ★鎭 (진), ★錫 (석) | 金 (쇠 금) |
37세 | 潤 (윤)★, 準 (준)★, 汶 (문)★ | 水 (물 수) |
38세 | ★稷 (직), ★栢 (백), ★杓 (표) | 木 (나무 목) |
39세 | 熙 (희)★, 煐 (영)★, 螢 (형)★ | 火 (불 화) |
40세 | ★堉 (육), ★墩 (돈), ★培 (배) | 土 (흙 토) |
41세 | 鐫 (전)★, 銓 (전)★, 鑽 (찬)★ | 金 (쇠 금) |
42세 | ★浩 (호), ★河 (하), ★洛 (락) | 水 (물 수) |
43세 | 和 (화)★, 楨 (정)★, 桓 (환)★ | 木 (나무 목) |
44세 | ★勳 (훈), ★黙 (묵), ★愚 (우) | 火 (불 화) |
혹시 이 표에서 자신의 이름이나 주변 창녕 조씨 분들의 이름에 들어가는 글자를 발견하셨나요? 이처럼 항렬자는 세대를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됩니다.
4. 역사의 페이지를 장식하고 현대를 빛내는 창녕 조씨 인물들
창녕 조씨 가문은 역사적으로나 현대적으로나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우리 사회 다방면에 큰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그 빛나는 이름들을 몇 분만 간략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조계룡 (曺繼龍): 두말할 필요 없는 창녕 조씨의 시조입니다. 신라 진평왕의 사위로, 가문의 문을 열었습니다.
- 조겸 (曺謙): 중시조로, 고려 태조 왕건의 부마가 되어 가문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용호위대장군을 역임했습니다.
- 조상치 (曺尙治): 조선 세종 때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뛰어난 학자입니다.
- 조석문 (曺錫文): 조선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영의정의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 조위 (曺偉): 조선 성종 때의 문신이자 성리학자로,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으로도 유명합니다.
- 조식 (曺植): 조선 중기의 매우 저명한 유학자로, 호는 남명(南冥)입니다. "백성을 위한 학문", 즉 실천적인 학문을 강조하며 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그의 사상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경의검(敬義劍)"과 "성성자(惺惺子)"라는 글귀를 몸에 지니고 다니며 항상 자신을 경계했다고 합니다.
- 조호익 (曺好益):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활약한 의병장이기도 합니다.
- 조만식 (曺晩植): 일제강점기 민족의 지도자이자 교육자로, 호는 고당(古堂)입니다. 물산장려운동을 이끌고 오산학교 교장을 역임하는 등 민족 교육과 독립운동에 헌신했습니다.
- 조봉암 (曺奉岩):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후 진보적인 정치가로 활동했습니다. 농지개혁 등 중요한 정책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 조재천 (曺在千): 대한민국 정치가로,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 조해녕 (曺海寧): 대한민국 정치가로, 대구광역시장을 지냈습니다.
- 조국 (曺國): 법학자이자 정치가로,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 조훈현 (曺薰鉉): "바둑황제"로 불리는 대한민국 프로 바둑 기사입니다. 세계 바둑계의 정상에 오르며 국위 선양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 조수미 (曺秀美): 세계적인 소프라노 성악가로, 아름다운 목소리와 뛰어난 기량으로 전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 조성모 (曺誠模):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가요계를 휩쓴 대한민국 대표 가수 중 한 명입니다.
- 태진아 (太珍兒, 본명 조방헌 曺芳憲): 대한민국 트로트계의 거목으로,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오랜 시간 사랑받고 있습니다.
- 조보아 (본명 조보윤):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대한민국 배우입니다.
이 외에도 창녕 조씨 가문에는 각계각층에서 활약한 수많은 인물들이 있으며,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 쓰이고 있습니다. 참고로 창녕 조씨의 성씨 한자는 '나라 조(曺)' 자를 사용합니다.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전통을 이어가는 창녕 조씨
지금까지 창녕 조씨의 시조 탄생 설화부터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다양한 분파와 체계적인 항렬자, 그리고 가문을 빛낸 주요 인물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창녕 조씨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성씨의 역사를 넘어, 신라 시대부터 이어져 온 우리 민족의 끈기와 지혜, 그리고 나라와 사회에 기여하고자 했던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전국 각지에 형성된 집성촌과 활발한 종친회 활동은 이러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현재까지도 면면히 이어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창녕 조씨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은 물론, 자신의 뿌리와 가문에 대한 관심과 자긍심을 한 번쯤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혹시 더 자세한 정보가 궁금하시다면 창녕 조씨 대종회나 관련 문헌을 참고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의 뿌리를 아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아는 것이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든든한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