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권씨 추밀공파 복야공파 부정공파 족보 돌림자 항렬표 인물

2025년 05월 10일 by 오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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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권씨 추밀공파 복야공파 부정공파 족보 돌림자 항렬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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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한국의 유서 깊은 성씨 중 하나인 안동 권씨(安東 權氏)에 대해 심도 있게 알아보고자 합니다. 안동 권씨는 신라 왕실에서 비롯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수많은 인물을 배출한 명문가입니다. 본 포스팅에서는 안동 권씨의 시조와 유래, 주요 분파, 그리고 항렬 체계에 대해 상세히 다루어 그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조명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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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권씨(安東 權氏)의 유구한 역사와 유래

안동 권씨의 역사는 천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며, 그 뿌리는 신라 시대에 닿아 있습니다. 그 시작과 발전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한국사 이해의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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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권행(權幸)과 사성(賜姓)의 배경

안동 권씨의 시조는 권행(權幸) 공입니다. 공의 본명은 김행(金幸)으로, 신라 왕실의 후예였습니다. 그의 생몰연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활동했던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927년(경순왕 원년),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의 수도 경주를 침공하여 포석정에서 경애왕을 시해하고 왕비를 능욕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에 김행은 김선평(金宣平), 장정필(張貞弼)과 함께 고창(古昌, 현재의 안동)에서 의병을 일으켜 후백제군에 맞서 싸웠습니다. 이 고창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 고려 태조 왕건이 신라를 구원하고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습니다. 이에 고려 태조 왕건은 김행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동쪽(東)을 편안(安)하게 하였다"는 의미로 고창군을 안동부(安東府)로 승격시키고, 김행에게는 삼한벽상공신 삼중대광태사(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太師)의 작위를 내렸습니다. 또한 "능히 기미를 밝히고 권도에 통달하였다(能炳幾達權)"는 뜻으로 권(權)씨 성을 하사하니, 이것이 바로 안동 권씨의 시작입니다. 실로 놀라운 역사적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라 왕실 김씨(金氏)와의 연원

앞서 언급했듯이, 시조 권행의 본래 성씨는 김씨(金氏)였습니다. 그는 신라의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즉 경주 김씨에서 분관한 것입니다. 이는 안동 권씨가 신라 왕성(王姓)에 뿌리를 둔 매우 유서 깊은 가문임을 시사합니다. 안동권씨태사공실기(安東權氏太師公實記) 및 대전 뿌리공원의 안동 권씨 조형물 설명, 그리고 성화보 서문 등 여러 기록에서 권씨가 본래 신라 종성 김씨였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안동 권씨는 신라 김씨의 동족으로서 그 역사적 정통성을 이어받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고려와 조선 시대를 빛낸 명문가

안동 권씨는 고려와 조선 양대에 걸쳐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국가 발전에 기여한 대표적인 명문가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원 간섭기 이후 권문세족으로 크게 발흥하여 원나라 황후 1명(권황후, 원 소종의 황후), 고려 후궁 1명, 정승 3명, 재추(宰樞, 재신과 추밀) 13명 이상을 배출하며 가문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찬란한 역사를 이어갔습니다. 명나라 후궁 1명(현비 권씨), 조선 추존왕후 1명(현덕왕후, 문종비이자 단종의 생모), 부마 4명, 종묘배향공신 1명(권율 장군), 공신 17명, 상신(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8명, 문과 급제자 368명, 무과 급제자 261명 등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습니다. 이는 조선시대 전체 성씨 중에서도 손꼽히는 기록입니다. 특히, 한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족보로 알려진 안동 권씨의 <성화보(成化譜)>는 1476년(성종 7)에 간행되었는데, 이는 가문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보존하려는 선조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와그너 교수 또한 이 성화보를 한국 최고(最古)의 족보로 평가한 바 있습니다.

안동 권씨의 주요 분파(分派)

안동 권씨는 시조 권행 이후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분파로 나뉘어 번성하였습니다. 각 분파는 고유한 역사와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가문의 다양성을 풍부하게 합니다.

다양한 분파의 형성

안동 권씨는 시조로부터 내려오면서 후손들이 각 지역에 정착하고, 특정 인물을 중시조(中始祖) 또는 파조(派祖)로 하여 분파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러한 분파는 혈연적 연결고리를 확인하고 가문의 계통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현재 안동 권씨에는 크게 15개의 대파(大派)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표적인 15개 대파(大派) 소개

안동 권씨의 주요 대파는 다음과 같습니다. 시조 권행의 아들인 권인행(權仁幸) 대에서, 혹은 그 후손 대에서 분화되기 시작합니다.

  1. 추밀공파(樞密公派): 파조 권수평(權守平)
  2. 복야공파(僕射公派) (복사공파): 파조 권수홍(權守洪)
  3. 별장공파(別將公派): 파조 권영정(權英正)
  4. 수중공파(守中公派) (직계종파): 파조 권수중(權守中)
  5. 부호장공파(副戶長公派): 파조 권시중(權時中)
  6. 동정공파(同正公派): 파조 권체달(權採達)
  7. 좌윤공파(佐尹公派): 파조 권지정(權至正)
  8. 부정공파(副正公派): 파조 권통의(權通義)
  9. 시중공파(侍中公派): 파조 권인가(權仁可)
  10. 급사중공파(給事中公派): 파조 권형윤(權衡允)
  11. 중윤공파(中允公派): 파조 권숙원(權叔元)
  12. 군기감공파(軍器監公派): 파조 권사발(權思拔)
  13. 정조공파(正朝公派) (광석공파): 파조 권대의(權大宜)
  14. 호장공파(戶長公派): 파조 권추(權樞)
  15. 검교공파(檢校公派): 파조 권척(權倜)

이 외에도 세부적으로 더 많은 지파가 존재하며, 각 파는 고유의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각 분파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안동 권씨를 이해하는 데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 될 것입니다.

분파 연구의 중요성

분파 연구는 단순히 가계도를 그리는 것을 넘어, 각 분파가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으며, 어떤 인물들을 배출했는지, 그리고 어떤 지역을 중심으로 생활권을 형성했는지 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곧 가문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기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길입니다. 안동 권씨 대종회 등을 통해 이러한 정보들이 꾸준히 연구되고 보존되고 있습니다.

안동 권씨 항렬표(行列表)와 그 의미

항렬은 같은 혈족 안에서 세대 간의 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이름에 특정 글자를 넣어 표시하는 전통적인 방법입니다. 안동 권씨 역시 체계적인 항렬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항렬의 개념과 중요성

항렬(行列)은 같은 시조의 후손들 사이에서 세대(世代表)를 나타내는 글자로, 주로 이름의 가운데 글자나 끝 글자에 사용됩니다. 이는 집안의 위계질서를 분명히 하고, 처음 만나는 친족이라도 항렬자를 통해 서로의 세대를 파악하여 예를 갖추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항렬자는 오행(五行) 상생설(木火土金水)이나 천간(天干) 등을 활용하여 순환적으로 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동 권씨의 독특한 항렬 문화

안동 권씨는 항렬을 철저히 지키는 가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공된 자료에 따르면, 안동 권씨는 여성에게도 예외 없이 항렬자를 적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하나, 이는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확인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일반적으로 항렬자는 부계 혈통을 따르는 남성에게 주로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 항렬자 규칙이 비교적 단순하여 항렬표에 없는 한자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언급되어 있으나, 대종회에서 제시하는 본항렬과 예비항렬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기준으로 696,319명으로 국내 11위의 대성(大姓)이며, 세대 분포가 넓어 동시대에 9세대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항렬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안동권씨의 항렬은 아래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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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권씨와 관련된 오해와 진실

역사가 깊고 인물이 많은 가문일수록 여러 이야기가 파생되기 마련입니다. 안동 권씨와 관련하여 몇 가지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신 안동 김씨 분적설의 진실

간혹 안동 권씨가 신 안동 김씨(新 安東 金氏)에서 분가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보학(譜學)적으로 볼 때, 안동 권씨의 시조 권행(김행)은 신라 종실(宗室) 출신으로 경주 김씨 계열입니다. 신 안동 김씨와 안동 권씨, 그리고 안동 장씨는 비슷한 시기에 안동을 기반으로 성장한 별개의 가문입니다. 시조 권행이 안동 김씨 인물이라는 자료는 어디에도 없으며, 오히려 신라 왕손임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점은 혼동하지 않아야 할 중요한 사실입니다!!

금나라(金)와의 관계 오해

고려사에 '김행(金幸)이라는 분은 금나라의 선조다.'라는 구절이 있어, 안동 권씨 시조 김행(金幸, 후일 권행)과 동일 인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다른 인물입니다. 안동 권씨의 시조 김행은 신라 말 고창(안동) 지역의 호족이었던 반면, 고려사에서 언급된 금나라 시조 관련 김행은 평주(平州, 황해도 평산)의 승려 금준(今俊)과 관련된 인물로 추정되며, 활동 지역과 시기 모두 다릅니다. 따라서 안동 권씨와 금나라 시조 설은 전혀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이처럼 안동 권씨는 신라 왕실에서 발원하여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수많은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 명문 거족입니다. 그 유래와 역사, 다양한 분파, 그리고 고유한 항렬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한국의 전통과 역사를 보다 깊이 있게 인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안동 권씨 후손들께서는 이러한 역사에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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